판결문에 이름을 쓸 수 없었다


1994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예비판사' 제도가 생겼다.


판사로 임용하기 전 2년간 수습 기간을 두고 품성과 자질을 검증하겠다는 취지였다. 1997년부터 실제 시행됐고, 그 이후 사법연수원을 마친 신임 법조인들은 곧바로 판사가 되는 대신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예비판사가 하는 일은 판사와 다르지 않았다.


합의부에 배석으로 들어갔고 주심으로 사건을 배당받았으며 기록을 검토하고 법리를 따졌다.

그리고 판결문을 썼다.


겉으로 보면 판사였다. 단 하나만 빼고.


자신이 쓴 판결문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판결문에는 재판에 참여한 법관 전원의 서명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예비판사는 법관이 아니었다. 그러니 밤을 새워 완성한 판결문을 들고 다른 판사들을 찾아다니며 서명을 구해야 했다.


예비판사들은 '홍길동 판결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아야 했던 홍길동처럼, 자신이 쓴 판결문을 내 것이라 부를 수 없었다.


제도는 2007년 4월 국회 본회의에서 폐지됐다.


당시 전국 법원에 재직 중이던 예비판사 180여 명은 법관임용 심사를 거쳐 정식 법관으로 임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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