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도 기뢰는 남는다. 이란이 아는 것도 그것이다
1946년 10월 22일, 인천 앞바다 소청도. 해방된 지 1년도 안 된 섬 마을 사람들이 해변가에 밀려든 기뢰를 분해하고 있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 때 서해에 뿌려놓고 간 것이었다. 안에서 유황을 꺼내 성냥 대용으로 쓰려 했다. 성냥 한 갑조차 귀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불을 댔다. 순식간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6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뢰는 사람을 죽였다. 2002년에야 마을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기뢰는 느리고 조용하다. 미사일처럼 하늘을 가르지 않는다. 그냥 바닥에 잠기거나 물속에 떠다니다가 기다린다. 거기가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 그게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2026년 3월, 그 기뢰가 다시 세계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1986년,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뒷방에서 이상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적국이었다. 그런데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에 TOW 대전차 미사일 1,500기 이상과 호크 지대공 미사일 부품을 팔았다. 명분은 레바논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 석방이었다. 그 판매 대금 일부는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의 반정부 무장세력 콘트라에 흘러들어 갔다. 의회가 콘트라 지원을 법으로 금지한 상황이었다.
언론이 이를 터뜨린 건 그해 11월이었다. 레이건은 TV 연설에 나서 이란에 무기를 판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인질과의 거래는 끝까지 부인했다. 그 발언이 나간 직후 갤럽 여론조사 지지율이 67%에서 46%로 수직 낙하했다. 3주 사이에 21포인트.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단기간 최대 낙폭이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무기 거래 그 자체가 아니었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을 살면서도, 결국 그 이란에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 원칙은 타협된다는 것. 그 진실이 더 치명적이었다.
스캔들이 한창이던 1987년 여름, 같은 이란이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미국을 시험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걸프만 수송로가 위태로워진 상황이었다. 쿠웨이트는 유조선을 미국 국기로 재국기(reflagging)해 보호를 요청했다. 그해 7월 24일, 재국기된 쿠웨이트 유조선 브리지튼(Bridgeton)이 기뢰에 피격됐다.
미국은 분노했지만 전면 충돌은 피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이란-콘트라 후폭풍에 휘청이고 있었고, 이란과의 전쟁을 감당할 정치적 여력이 없었다. 결국 어니스트 윌 작전(Operation Earnest Will)을 통해 유조선을 호위하는 선에서 선을 그었다.
그러나 2026년은 다르다. 1987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당시 미국은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순수입국이었다. 지금은 셰일 혁명 이후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다. 호르무즈가 막혀도 미국은 버틸 수 있다. 버티지 못하는 쪽은 따로 있다.
한국, 일본, 대만이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약 69%, 그중 95% 이상이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정부와 민간 비축량을 합산하면 원유 약 208일 치가 쌓여 있다. 숫자만 보면 넉넉해 보인다. 그런데 천연가스는 다른 이야기다. LNG 저장 설비는 원유와 다르게 대규모 비축이 어렵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되면 가스 수급이 먼저 흔들린다.
일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비축량이 풍부하다고 해도 결국 보충이 안 되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대만은 반도체 생산에 막대한 에너지를 쓰는 나라다. 공장이 멈추는 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문제가 된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동맹국들의 생존 이해관계가 처음으로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CNN과 CBS는 3월 10일 전후로 미 정보 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선박들이 레이더 감시망을 피해 기뢰 두세 개씩을 싣고 나가 설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기뢰가 제거되지 않으면 이란에 대한 군사적 결과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경고문을 올렸다.
미 중부사령부는 기뢰부설 선박 16척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기뢰 저장시설 타격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미 해군이 선사들의 호위 요청에 '공격 위험이 너무 높다'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뢰 부설 선박을 쳤다는 것과 항로를 안전하게 열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란이 보유한 기뢰는 최소 2,000발, 최대 6,000발로 추정된다. 그중엔 마함(Maham)이라는 스마트 기뢰도 있다. 수중에서 선박의 엔진 소음이나 자기장 변화를 감지해 폭발하는 방식이다. 마함-2는 3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도 두 동강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통로는 폭이 34km 수준이다. 하지만 암초가 많고 수심이 얕아 초대형 유조선이 실제로 지나갈 수 있는 항로는 들어오는 쪽 3km, 나가는 쪽 3km가 전부다. 거기에 기뢰가 깔렸다는 소문만 돌아도 보험사는 보증을 철회한다. 보험이 없으면 선박은 못 다닌다. 실제로 기뢰가 몇 개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항로는 닫힌다.
소해함을 투입해 수백 개의 탐지 드론으로 샅샅이 뒤진 뒤 기뢰를 제거해 1km 폭의 안전 항로를 뚫는 데만 2주 이상이 걸린다. 기뢰 부설이 계속되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모 전문가는 기뢰가 수천 개에 이를 경우 종전 이후에도 제거 작업에 6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끝나도 바다는 바로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소해 능력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동에 배치되어 있던 마지막 소해함 4척이 2025년 9월 바레인 마나마 기지에서 퇴역했다. 미 해군은 노후화된 어벤저급을 연안전투함(LCS) 모듈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 전환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형을 먼저 퇴역시켰다. 화재 이전에 소방차를 처분한 격이다.
반면 일본 해상자위대는 2025년 기준 19척의 소해 함정을 운용 중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뢰전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 요청으로 소해 임무를 수행했고, 1991년 걸프전 이후에도 페르시아만에 소해함을 파견했다. 이번에도 일본의 소해 능력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뢰는 소청도 해변에서 67명의 목숨을 빼앗은 뒤 56년 동안 위령탑도 없이 방치됐다. 세계가 관심을 갖지 않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는 세계가 관심을 갖는다. 유가 때문이다. 반도체 때문이다. 공급망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기의 본질은 1946년 소청도와 다르지 않다. 바닥에 잠기거나 물속에 떠다니면서 기다린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지나갈지 모른 채로.
전쟁이 끝나도 기뢰는 남는다. 협상이 타결되어도 바다는 바로 열리지 않는다. 기뢰는 전쟁의 마지막 문장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쓰이는 후기(後記)다. 이란이 알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