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1,400만이 극장을 다녀갔다. 조선의 왕이 그리워서도 아니고, 신분제를 되살리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냥, 왕좌에서 쫓겨난 열두 살 아이의 이야기에 이 나라 사람들이 줄지어 자리에 앉았다. 결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손석희가 MBC '손석희의 질문들4'에서 장항준 감독을 앞에 두고 어느 관객 댓글을 소개했다. "500여 년 만에 전 국민이 단종의 장례를 치른 것 같다." 장항준은 그 말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단종이 죽던 1457년, 세조는 명을 내렸다. 시신을 건드리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엄흥도 한 사람만이 어머니를 위해 아껴둔 관과 수의를 꺼내 그 몸을 수습했다. "선을 행하다가 화를 입어도 달게 받겠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역사서에는 이름 석 자만 남았다.
그 무덤은 200년 넘게 방치됐다. 숙종 때 가서야 왕으로 복권됐고, 엄흥도는 고종 대에야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지금도 장릉은 영월 땅에 그대로 있다. 조선 왕릉 중 수도권 밖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다. 제대로 된 장례 한 번 없이 500년이 흘렀고, 그 500년 만의 장례를 1,400만 명이 극장에서 치른 셈이다.
세조가 나빠서 분노하고, 단종이 가여워서 우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어떤 감각이 작동하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 혼자 치러준 장례를, 아무도 기억하자고 약속한 적 없는데, 이 땅 사람들은 500년 동안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한 편이 그걸 꺼냈다.
'민족'이라는 단어가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건 역사학자들이 이미 정리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단어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이 땅 사람들은 같은 죽음을 억울해하고 같은 슬픔 앞에서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는 감각을 나눠 갖고 있었다. 그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민족'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극장을 나오면서 눈이 붉어진 사람들이 치른 건 단순한 영화 관람이 아닌것 같다. 누군가의 댓글처럼, 그 댓글에 공감한 수많은 사람들처럼 500년 묵은 빚을 함께 갚은 것에 가깝다.
이보다 더 뜨거운 증거가 달리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