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해방 이후 남과 북은 각각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단독정부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북부, 특히 서북지역의 지식인과 종교인, 청년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 수립과 6·25 전쟁, 4·19 혁명, 박정희의 5·16과 유신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격변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해방 후에는 지식인으로 활동한 장준하였다. 그는 1953년 월간 잡지 『사상계』를 창간해 1970년 강제 종간에 이르기까지 권위주의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한국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60~70년대를 거치며 『사상계』를 둘러싼 인물들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우익’의 이미지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김수환 추기경, 장준하의 오랜 친구이자 민주화 운동을 뒷받침한 김준엽 총장, 한국 인문 정신의 깊이를 보여준 시인 김수영 등이 그러하다. 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해방 이후의 우익은 단순히 국가주의와 반공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서북 출신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선우휘도 그 스펙트럼 안에 자리한다. 그는 언론인 생활과 군 복무를 오가며 반공 국가주의와 서북 지역 네트워크 속에서 성장했고, 훗날 조선일보의 주필로 신문의 체질을 바꾸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같은 서북 출신이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인물이 조선일보 후배 기자 리영희였다. 두 사람은 한 신문사 안에서, 같은 시대의 냉전 구조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1968년, 소설가 출신 편집국장이 된 선우휘는 외신부장을 맡고 있던 리영희를 갑작스럽게 조사부장으로 보냈다. 1년 뒤에는 직제에도 없던 심의부를 신설해 그를 다시 그곳으로 발령 냈다. 사실상 “나가라”는 신호였다. 리영희가 사표 제출을 거부하자, 선우휘는 베트남 파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언론사 외신부장들의 베트남 현지 시찰을 두 차례 거절한 일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것이 사상적으로도 문제이고 회사와 정부의 반공 정책에도 맞지 않는다며,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통보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언론사와 대학에서의 해직과 연행은, 한 개인의 이력이라기보다 냉전 체제와 국가 권력이 비판적 지식인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 이면에는, 특별 대우를 약속하며 베트남행을 요구하던 정보기관의 압박이 자리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상계』가 1957년 반공 소설로 알려진 「불꽃」을 쓴 선우휘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겼다는 사실이다. 같은 서북 출신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판적 시사 월간지와 국가주의적 색채를 띤 소설이 한 무대 위에서 엮여 있었다. 오늘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좌우 구분만으로는 이 관계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 책은 서북지역에서 남하한 지식인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흐름을 함께 추적한다. 여기에는 일본의 무교회주의 기독교에 영향을 받아 교회 제도보다는 성서와 양심을 중심에 둔 신앙을 실천하려 했던 김교신과 그의 제자들이 있다. 김교신과 함께 동인지 『성서조선』을 만든 함석헌은, 씨알 사상으로 알려진 독특한 역사 인식을 펼치며 민중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오늘날까지도 진보적 학풍을 유지하고 있는 한신대학교의 신학 전통과, 한국 천주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려 했던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의 행보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신앙을 통해 국가주의와 체제 비판, 인권과 평화를 함께 고민한 이들의 궤적은, 우익과 보수의 얼굴이 결코 한 가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언론인 천관우, 시인 조지훈과 김수영 같은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학교 교육과 정치 구호를 통해 익혀온 좁은 의미의 ‘우익’, 이른바 보수의 스펙트럼이 실제보다 훨씬 축소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반공·친미·권위주의만으로는 한국 우익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며 상처 입은 민족의식, 신앙에서 출발한 인간 존엄의 감각, 권력에 맞선 언론과 지식인의 양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정치와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일부 보수·우익 세력이 짜놓은 좌우 프레임에 스스로 갇힐 이유는 많지 않다. 해방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친일 세력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우익’이라는 이름을 선점하고자 했다. 오늘날에도 좌우 구도를 과장하고 갈등을 키워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누구인지 묻는 일은 과거사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민주주의를 점검하는 질문이 된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이야기는, 한국 우익의 기원과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서사다. 자신의 입장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모두를 좌파로 몰아붙이며, 극우적 국가주의만을 유일한 보수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서사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런 인물들을 ‘양심적 우익’의 계보로 읽어낸다. 친일과 친미, 반공과 안보, 독재 정권 옹호로 점철된 극우 세력의 언어와는 다른 이름을 우익에게 돌려주려는 시도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극단적 시선에서 정의된 좌우 대신, 역사 속에서 축적된 다양한 보수와 우익의 얼굴을 함께 떠올릴 필요가 있다. 양심적 우익의 이름을 되찾는 일은, 그 균형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리영희의 평론집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머리말은 이 글의 결론을 잘 요약해 준다. 그는 어느 한쪽의 정치권력에도 예속되지 않고,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힘에 맞서 진실을 찾아내는 일을 글쓰기의 목적이라 선언했다. 진실은 어느 한 진영의 독점물이 아니며,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 속에서만 제대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새가 두 날개로 몸을 지탱하며 하늘을 나는 것처럼,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 위에서만 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그의 말은, 오늘 우리가 ‘우익’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사용할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 책이 보여 주는 양심적 우익의 얼굴들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