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는 곧 승진?

30대 상장사에서 인사팀장을 맡고 있는 사람과 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말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만 좋으면 언젠가는 승진하겠지”라고 믿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오피스」를 보면, 마이클 스콧은 누구보다 뛰어난 세일즈맨이지만, 관리자가 되고 나서는 계속 사고를 친다. 성과가 좋은 직원이 새로운 자리에서도 잘할지, 조직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보너스를 더 얹어주고,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쪽을 선택하곤 한다.


승진 대신 ‘지금 자리에 묶어 두는 보상’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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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상으로 승진에는 또 다른 기준이 있다. 직급마다 기대되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대리라면 주어진 일을 빠뜨리지 않고 해내는 성실함이 중요하고, 과장이라면 다른 팀과 부서를 오가며 일을 조율하고 프로젝트를 끌어가는 힘이 필요하다. 차장과 부장에게는 팀의 방향을 잡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다음 직급에서 기대되는 역할을 이미 ‘부분적으로라도’ 보여준 사람이 승진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원칙이 온전히 지켜지는 조직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승진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실제 회사에서 승진 심사를 하는 건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 과정은 늘 불완전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돌아와야 할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끝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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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노골적인 현실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많은 조직의 인사에서는 이런 계산이 작동한다. 잘하고 잠재력 있는 직원을 제때 승진시켜 보내는 것보다, 지금 자리에서 계속 최대한 뽑아 쓰는 쪽이 비용 면에서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그래서 “이번에만 조금 더 도와 달라”, “다음 인사 때는 꼭 챙기겠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우수한 직원을 같은 자리에 붙들어 두곤 한다. 그 사이에 승진은 번번이 미뤄진다.


이런 환경에서 우수 직원들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더 속다가 지치거나,

기대를 접고 회사를 떠나거나.


조직 입장에서는 뒤늦게 채용 비용과 교육 비용을 치르기보다는, 이미 일을 잘 아는 기존 인력을 조금 더 싸게 쓰는 쪽이 경제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게 인사 전략이기도 하다.



일부 조직에서는 내부 지원 서류를 의도적으로 늦게 올리거나, 아예 누락시키는 방식으로 특정 직원을 승진 레이스에서 빼버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인사가 한 사람의 인생과 커리어를 좌우하는 문제임을 생각하면, 이런 일들은 소문으로만 들을 때도 기분이 씁쓸하다. 그럼에도 그런 사건이 드물지 않게 다시 등장한다. 이게 우리가 몸담고 있는 회사들의 또 다른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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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봉제가 중심인 조직에서는 성과평가가 형식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누가 더 잘했는가 보다는, 누가 먼저 눈에 들었는지, 누가 먼저 인사권자와 가까워졌는지가 실제 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지만, 무능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도, 운 좋게 일찍 눈도장을 찍어두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는다. 그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거기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가지 착각만큼은 빨리 내려놓는 편이 좋다. 성과만 좋으면 언젠가 공정하게 승진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콘크리트 정글에서는, 그 믿음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승진이 전부가 아니라면, 내 커리어의 주도권을 어디에 둘 것인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 계산을 스스로 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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