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모든 것이 예술
아침댓바람부터 부시시하고 불그스레 잘 익은 그는 난데없이 '엄마 해바라기라니 정말 웃기잖아. 해가 그렇게나 보고 싶어서 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서 머리를 요리조리 움직여서 이름이 해바라기가 된 거 잖아' 하며 키득거린다.
푹 자고 일어나 잘 익은 복숭아빛 낯빛을 한 그가 입이 살아 퍼득퍼득 생동하는 것이 내 살갗아래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의 몸길이가 나의 아랫팔뚝보다 짧던 시절이 떠올라 나도 피식 웃고만다. 엎어두면 길게 잠을 자니 재워두고 곁에서 고된 몸이라도 뉘일까싶어 잔꾀를 내었다가도 고개도 못 가누는 여리고 작은 것이 고개 돌리다 머리박고 숨 못쉬어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찌할까 불안이 고개를 치켜들면 눈 붙이고 싶던 마음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퀭한 시선이 그 작은 생명체 하나에 꿈뻑이며 붙었다. 결국 멀겋게 뜬 낯빛으로 고것을 품에 안아 안절부절 못하다 등 닿도록 눕혀두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시뻘겋게 달아서 빽빽 울어대면 따라 엉엉 울던 오래된 시간이 툭 하고 내 앞에 놓여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작은 몸뚱이가 '보고싶은' 것을 따라 눈알이 먼저 굴러다니고 구르는 것이 눈알로는 부족했는지 그 시절 그에겐 육중했을 머리가, 몸이 요리조리 움직이다 보니 뒤집고, 뒤집힌 몸에 본인의 팔이 깔려울고, 용을 쓰며 용케 기어 나아가던 한 뼘 한 뼘을 곁에서 주먹 말아쥐고 기를 모아 응원하던 그의 꼬꼬마시절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잊고 산 것은 그 뿐이 아니다. 그의 아비되는 자가 돌아서면 그리워 앓이하던 시절에는 움직임의 반경에 놓일 거라 꿈도 꾸지 않았던 대구의 조그만 시골마을 칠곡을 내 집앞 드나들 듯 다녔다. 부산을 가로질러 부산역에서 대구역으로, 그러고도 기차를 갈아타고 적막한 칠곡역에 도착하면 기차가 멈추기도 전에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그자의 실루엣만 비추어져도 가슴이 떨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즘되면 '보고싶다'라는 것이 가히 혁명적인 일이 아닌가한다. 풋풋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훌쩍 내딛는 발걸음은 때로는 지역을 때로는 나라를 건너는 법.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약 12년 전의 그가 그의 세상의 모든 것이었을 스스로의 몸을 뒤집어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그러했듯이. 또한 약 13년 전의 내가 첩첩시골마을에 사는 그 자를 만나겠다는 간절함으로 기차를 갈아타는 수고와 거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듯이, 오늘 아침 그를 키득거리게 만든 꽃 한 송이가 스스로 움직여 태양빛에 닿으려 하다 '해바라기'가 되었듯이.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며 스스로를 표현한다. 그가 뒤집기하며 용쓰며 본인의 몸이 가진 영역과 한계와 가능성을 인식하며 지금 번듯이 뛰어다니고 호불호가 확실한 청소년으로 자라나는 중이듯, 보고싶은 것을 향해 기차에 몸을 싣고서 사랑에 흠뻑 젖던 소싯적의 나와 그 자의 관계가 여전히 발효하며 맛의 깊이를 더하듯. 모를일이긴 해도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리듬안에서 피어나고 지는 생명력을 만끽할지도.
몸을 움직이며 '그 순간의 나'를 경험하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인식한다. '나로 존재하는 것'과 '세상안에서 움직이고 마찰하며 발견하는 나'의 절묘한 조화는 광대의 외줄타기 같이 위태롭게도 시선을 뗄 수 없이 아름답게도 나에게 와 닿는다. 며칠 전 카페에 마주앉은 친구에게 ' 세상에서 무엇을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종종 생각해'라는 말에 시차를 두고 온 답신.
... '예술이라는 단어를 확장시키는 데 그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인 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예술은 자아를 발산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하는 방법, 우아하고 힘차게 존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껏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표현해 온 모든 순간들이 포착한 움직임들에 건배하고 싶은 하루. 우리 모두의 삶에 건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