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序

108배에 앞서

by 쓰임

그러니까 그것은 안온하게 '보이는' 일상의 비루한 욕망들에 구멍을 뚫는 일이다.


새벽 4시에 뜨인 눈.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가족여행 중인 가까운 지인의 인스타그램의 잔상을 보았다. 생각은 뇌의 언어이고 느낌은 몸의 언어라 그랬나. 잡육이 마구 섞인 돼지국밥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와 같이 잡히지 않은 잡생각들이 한데 버무려진다.


함께 일한 동료와의 1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금일봉 혹은 '가족'여행을 선물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또한 그 동료를 한 지붕아래 품으며 가족이라는 테두리안에 담아 '가족'의 일원으로 삼는 기존의 가족상을 허물어 낸 그들의 시도가 상당히 고무적이다. 또한 1년간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축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가히 영감이 되는 그들의 여행의 편린을 간밤에 잠들기 전 기껏해야 몇 장의 사진으로 조우했을 뿐인데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문다. 생각 속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은 그들의 삶에 대한 시기도 수많은 잡생각들의 한 모서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적나라하게 펼쳐보면 그들의 경험이 완전히 아름답지는 않겠지하고 내심 나를 위로하는 자아의 어떤 단면이 연쇄적으로 발굴해내는 과거의 못난 얼굴들에 둘러싸이면 처참한 기분이 되고 만다.



이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생각이 몸 구석 구석의 어딘가에 생생한 느낌으로 변하는 화학작용. 없었는데 이제 있다. 비물질인 생각이 물질이 되는 마법 같은 것. 무에서 유를 끝도 없이 창조해내는 인간은 가히 연금술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각설하고 절방석위에 앉는다.


"제가 이 기도를 올림은 내 일신의 안락함을 구함이 아니옵고 더불어 사는 온 세상 유정 무정들이 모두 안락하기를 기원하는 것이오며 불법을 속히 익혀 열반에 이르고자 함이옵니다."


'잔뜩 시기해놓구선..'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이 엎드리고 일어서고 하는 사이에 자취를 감춘다. 오랫동안 108배를 해왔고, 오랫동안 '기도'라던가 '열반'이라던가 하는 단어가 까끌거리고 삼켜지지 않았다. 다만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는 몸의 행위가 좋았다. 태반 안의 웅크림과 같이 그것이 태초와 닿아있는 것만 같으므로. 사지를 쭉 뻗고 펼치며 외부, 세상과 마주하고 서는 진취적인 에너지는 때로는 고되기도 하므로. 품어 안아진 상태의 몸을 닮은 절이, 그래서 좋았다. 다 해내려고 애쓰지 말아라하는 지혜로운 어미의 품 같은 곳이자 것. 그러니 이것은 홀로 하는 수행같아도 나에게 잊을만하면 더불어 사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때로는 내 일상의 불안이 담긴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관음하며 시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홀로는 우뚝 설 수 없는 하루하루 시기하는 마음이 깊이 품고 있는 채울 것 가득한 가능성을 품은 씨앗에 물을 주고 피워내면 그만이라고 다독이는 것이다.


생각도 못한 순간에 잘 익은 골드키위를, 창 너머로 주렁주렁 익어가는 단감과 가지, 고추같은 텃밭의 채소들을 건네는 이웃과 마주할 때, 내가 받은 마음을 나 또한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풍성해지는 그곳에 나의 안락이 놓여있다. 그러니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그 어딘가가 열반일지도 모를 일, 하루가 멀다하고 잊을 법하면 눈 뜨고 앉아 웅크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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