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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n 21. 2024

나는 존재한다. 고로 잘 생각한다.

생각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살아가기

대학 졸업 후 첫 취직을 했을 때 동생이 내게 선물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바로 론다 번의 저서 『시크릿』. 그래도 국문학과 나와서 임용 준비까지 하는 애가 골라준 책이니 믿고 읽었다. 책을 읽은 후의 소감은 '소설인가?'였다. 사실이 아닌 말들로 뻥튀기 해놓은 극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겉으론 그걸 믿지 않으면서 마음의 저 한편엔 먼지 한 톨만 한 다른 마음도 있었다. "진짜 원하는 걸 끌어당기는 게 가능할까?" 그 책은 내 삶에 잠시 스쳐 지나간버스 같은 책이었다. 그 뒤로 다시 펼쳐본 적도 없고 그냥 책꽂이에서 먼지만 가득 안고 긴 잠을 잤다.


직장인으로 살아가기에 바빴고 그러다 어영부영 결혼도 했다. 그즈음 청소년 진로교육 같은 곳에서 비전보드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시크릿과 비슷한 종류의 책인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 내용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센터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구경한 걸 따라 했다. 신혼 방 작은 벽에 커다란 폼보드를 붙여놓고 신랑과 함께 우리의 꿈꾸는 미래를 덕지덕지 붙였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의 놀이로 끝났고 우리의 비전은 또다시 흐려졌다. 매일 먹고 사는 게 더 급선무이니 꿈 같은 건 쉽게 뒷전이 되었다.


아이 키우며 이런저런 삶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꿈들과 한없이 멀어졌다. 남은 거라곤 늘어난 살들과 스트레스성 위염, 여러 인간군상에 치여 히키코모리가 되고 싶어 하는 단절된 마음뿐이었다. 3년 전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짐들을 정리하면서 책들도 정리했다. 오랜만에 손에 잡힌 시크릿책을 스르륵 넘기며 웃었다. 이 허무맹랑한 책이 내집에 아직도 있다니. 책은 곧장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동생에게 받은 선물이었다는 것도 잊고 불필요의 이유로 단칼에 정리됨)


사는데 너무 애를 쓴 탓인지 힘들어진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어려웠다. 힘든 마음을 정리하려고 심리, 영성책만 냅다 파기 시작했다. 마이클 싱어의 책을 읽으며 그래 내 비록 마음은 다쳤으나 영혼은 상처받지 않았다며 나를 다독이고,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을 읽으며 뭘 잡은지도 모른 채 내려놓자 내려놓자, 주문만 외웠다. 에크하르트 툴레의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이 아닌데 왜 내 생각이 나를 조종하냐 가슴을 두드렸다. 그렇게 몇 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다시 희망을 품는 내가 보였다.


내 손으로 시크릿 책을 다시 샀다. 내 안의 거인을 깨우기 위해 토니로빈슨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몇 달째 확언쓰기 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꿈을 쓰고 있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이런 걸 쓴다고 저절로 꿈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결국 이곳은 행동의 별이니까. 하지만 쓰는 것을 통해 최소한 내가 나를 다잡고 바꿔 가는 것에는 도움이 된다. 가끔 이걸 쓸 시간에 뭘 하나 더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꿈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 달랐다. 내가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는지 매일 확인하며 사는 건 그것만으로도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 『정오의 악마』


사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고 생각이 내 주인이 되었다. 생각에 치이고, 생각으로 고통받고, 생각에 조종당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데카르트도 분명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는데, 왜 생각을 하면서 존재하지 못하고 생각에 당하면서 존재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저절로 나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건 아무래도 생각을 너무 가리지 않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에게는 모든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아무 생각이나 하다보면 그 생각을 따라 마음이 변하고 또 행동하게 된다. 


생각은 우리의 귀한 보물이다. 그 귀한 보물을 잘 사용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 글쓰기다. 내가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종이 위에 또렷이 살려내면 무엇이 나를 흔들고 있는지 보인다. 그러면 다시 글을 통해 나에게 필요한 생각을 처방하는 것이다. 원하는 삶과 머릿속 생각을 일치시키는 건 깨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사는대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한대로 살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데카르트의 문장을 뒤집어본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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