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그들은 마지막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끝이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모든 걸 삼키고 떠나버렸다. 남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은 매정함이다. 무엇이라도 좀 남기고 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읽을 길은 영원히 없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걸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여긴 걸까. 진짜 마지막을 위해 아껴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 걸까.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기술은 서툴렀다. 자신의 목숨이 꺼져가는 하루하루를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갔을지 궁금했다. 삶의 마지막을 고하며 우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별의 끝은 이별 그 자체뿐이었다.
암 선고 이후부터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써 내려간 김진영 선생님의 『아침의 피아노』는 그런 나의 갈증을 채워주었다. 글에 담긴 마음이 내 부모의 마음과 같진 않았겠지만 겪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삶 가장자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들의 마음을 짐작해 보곤 했다.
받아들임과 받아들일 수 없음.
슬프기도 하지만 슬픔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생명의 끝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의 찬란함.
아픔도 그저 삶이라는 사실.
사랑과 아름다움, 다시 또 사랑.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삶을 관조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집요한 사랑이 아름다웠다. 그의 집요함은 삶에 대한 찬양이자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생의 끝까지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꽉 짜내듯, 마지막 밥 한 톨까지 꼭꼭 씹어먹듯,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생생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 모양과 색깔은 다르겠지만 나의 부모님도 마지막까지 이 삶을 정성껏 입력하고 계셨으리라. 차마 나누지 못하고 간 그들의 시선을 함께 따라 걸었다. 나는 부모님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미리 남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에 지쳐있을 때, 삶을 사랑하고 싶을 때 220번째 애도 일기를 펼친다.
"아침. 다시 다가온 하루. 또 힘든 일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다시 도래한 하루는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덕분에 또 오늘을 환대하러 몸을 일으킨다. 이 하루의 맞이는 그 자체로 축복이다. 우린 어쩌면 매일 애도 일기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도래하지 않는 나의 어느 날을 맞이할 것이고, 내게 주어진 페이지는 끝이 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