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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Oct 23. 2024

혼자는 기본값

부지런한 은둔자

나는 혼자 노는 걸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혼자 카페에 가서 책 읽는 걸 좋아하고, 혼자 국밥집에 가서 잘 삶긴 야들야들한 고기와 뜨끈한 국물을 마실 때 행복감을 느낀다. 남편과 걸을 때도 좋지만 혼자 산책하는 기쁨은 놓칠 수 없다. 내 주변을 둘러싼 세상을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만날 수 있으니까. 혼자 서점에 가거나, 문구점을 구경하고, 때론 팝콘 대신 오다리와 커피 한 잔을 들고 혼자 영화 보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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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해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교성이 부족해 보일 때가 있다. 그다지 사람들을 갈망하거나 쫓아다니진 않으니까. 그런데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사교의 방식과 정도와 기준은 누구에게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끝맺음 되는 건지. 무엇을 사교적이고 무엇을 사교적이지 않다고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왜 사교적임을 강요하는 건지.

혼자의 시간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카페에 갈 때마다 만나게 되는 동네 언니가 있다. 언니는 늘 아이를 데리고 온다. 나를 볼 때마다 "오~!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네요." 하며 독특한 취미를 가진 아줌마로 바라본다. 또 내 친구 남편은 혼자 카페에 가서 할 게 뭐 있냐고, 가서 대체 뭘 하는 거냐고 맨날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냥 저 사람은 그렇구나! 하면 될 것을. 자기가 추구하지 않는 생활방식은 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모습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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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매일, 자주 관계하는 것보다 혼자 어딘가에 몰입하는 시간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할 뿐이다. 주변엔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혼자서는 밥집이든 카페든 아무것도 해본 적 없다는 친구도 많다. 그러면서 나를 절반은 신기하게, 절반은 대단하게 여긴다. 전혀 특별할 게 없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하다. 세상에 올 때도 갈 때도 혼자인 게 인간의 기본값인데 혼자 있는 걸 지독하게 견디지 못하고 24시간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하는 그 근성을 왜 사교성 좋고 성격 좋다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는 건지 우습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게 삶이라 하지만, 혼자라는 독립적 개체로서의 생활에 대한 존중을 제외하고 관계를 강요받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걸 어떻게 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나. 사회적으로 추앙받는 삶이 관계를 잘하는 삶이니 친구가 만나자는 제안을 몇 번 거절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니 상대적으로 덜 연락하고, 덜 원하는 듯 보이는 나를 사람들은 마음대로 판단한다. 내 마음이 작아서 그렇다고 마음대로 재단하고 축소했다. 만남의 횟수와 상관없이 내 마음은 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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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어릴 적에도 난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잘 놀고 함께 노는 걸 좋아했지만, 어쩐지 내 마음이 풍요롭고 순수하게 기쁜 시간은 혼자 무언가를 할 때였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게 걱정을 일으키거나 문제 있는 사람처럼 비치지 않으면 좋겠다. 관계가 두려워 혼자의 세계로 숨어버리는 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혼자가 되는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고 언제든 먼저 존중받아야 할 시간이다. 너무도 당연한 시간인 것이다. 맛있는 음식도 가끔 먹어야 그 기쁨을 아는 것처럼, 혼자의 시간을 사랑하기에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더 즐겁다. 

나만의 시간을 향유하는 것은 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큰 특권이다. 거창하게 배낭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체험을 해야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혼자'라는 울타리를 잠시라도 만들고 그 속에서 오롯이 그 시간과 공간을 꽉 차게 만끽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난, 부지런하게 은둔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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