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식물원(Arnold Arboretum)
이번 보스턴 여행의 목적은 처음부터 ‘현지인 생활’이었다. 관광객 모드로 다니기보다는 일상생활을 하는 한 시민처럼 지내고 싶었고, 동네 곳곳을 다니며 풍경을 담고 차이를 발견하고 싶었다. 먼 나라 미국까지 왔으니 당연히 누구나 알만한 명소를 다니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평범하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도 인연이 닿는다면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어딜 가든 그곳은 우리에게는 낯선 곳일 테고, 평소에 눈으로 보고 경험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 가득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결론적으로 잠깐 지내러 온 타지인은 문 앞을 나서기만 해도 언제나, 모든 것이 새로움과 자극이다.
그러니 인생이 무료하거나,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는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특별함을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와 다른 이질감을 접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스미고 마음속 찌꺼기가 홀연히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관성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늘 하던 방식대로 생각하고 늘 느끼는 것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럴 때 억지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며 반드시 멋진 무엇을 찾아 나서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다른 것’. 내가 평소에 경험하던 것과 다른 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만 보던 것을 저렇게 볼 수 있게 되고, 꽉 막혀있던 내가 다른 내가 된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먼 길 나서기를 시도하지 않고, 아주 소박하게 동네 근처의 식물원을 선택했다. 이름은 아놀드 식물원(Arnold Arboretum).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평소에도 공원이나 식물원에 다니기를 좋아한다. 동네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어릴 때 대안교육 유치원을 다니면서 늘 자연에서 뛰놀기를 1순위로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이런저런 이유를 애써 찾아 붙인 것일 수도 있겠다. 사실은 그냥 우리 가족의 기질과 성향이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인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좋아하니 찾게 되고, 자주 찾게 되니 더 좋아진다.
단순히 ‘공원’이 아니라 ‘식물원’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은 뭐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식물원은 시민들의 휴식을 위해 아름답게 꾸며놓은 조경의 형태가 아니다. 엄연히 식물을 관찰, 연구하고 지식을 보급하기 위한 뚜렷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니 차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렸다. 내리자마자 눈앞에 커다란 나무들이 보였다. 아놀드 식물원은 하버드 대학교 부속 식물 연구 기관이다. 전 세계에서 온 희귀식물을 포함하여 1만 5천여 종 이상 있다. 게다가 1905년 첫 한국 방문을 시작으로 한국의 다양한 식물을 수집하고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에 120년 전 한반도에서 건너간 나무가 살고 있다는 건데, 내 눈엔 그 나무가 그 나무 같으니 확인할 길은 없었다. 식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나는, 여러 다양한 나무를 그 나무에 그 나무처럼 여기며 감흥을 즐기지는 못했다. 나무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각 개체로서의 존중받지 못한 것에 탄복하겠지만, 푸른 기운을 가득 누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잘 자라주는 나무가 고마웠다.
구분하고 분류하고 가려낼 수는 없었으나, 자세히 보면 꽤 다양한 종의 나무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다 같이 초록 옷을 입고 있어서 눈과 마음이 청량해졌으나, 봄이나 가을에 왔다면 왠지 절경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들면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서로 다른 나무들이 어울려 각기 다른 꽃을 피우고 형형색색의 단풍을 물들인다면, 그곳을 에덴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황홀한 풍경일 것 같았다. 다른 계절에 와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잡고 올 수 있는 건 방학뿐이고, 그렇다면 여름과 겨울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보스턴의 겨울은 11월부터 시작되며 오후 4시만 되어도 캄캄한 밤이 된다고 하였으니 우린 여름의 보스턴을 만나는 것에 그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보스턴에서 본 여름의 식물원은 울타리가 있는 보스턴일 뿐이었다. 그 말이 무엇인고 하면, 사실 보스턴은 집 앞이든, 찻길이든 길거리 곳곳이 울창한 나무다.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하고 그 수량도 어마어마하다. 거리에서 크고 많은 나무를 손쉽게 볼 수 있으니 딱히 식물원에 가지 않아도 도시 전체가 식물원인 셈이다. 그래서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수목원에 갔을 때보다 감응이 없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식물원 방문으로 좋았던 건 그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도 되는 공터가 있다는 점이었고, 열심히! 애써서! 익스큐즈미와 아임 쏘리를 외치며 감히 무례를 범할까 조심조심 신경 쓰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원은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어디서든 자연과 교감하라는 입구의 표지판처럼 생명의 살아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볕이 뜨거운 여름날이었지만 수목원 속의 사람들은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딸과 함께 온 아빠는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혼자 온 젊은 여자는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다섯 명의 어린이 부대는 자전거를 타고 넓은 식물원을 자유로이 누비고 있었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끄는 또 다른 다섯 명의 엄마는 답답하리만큼 천천히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스몰토크를 즐기는 데 여념 없었다.
넓은 땅에 살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넓어지는 걸까? 보스턴에 온 일주일 내내 누군가 화내는 모습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짜증을 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물며 우는 아이도 없고, 짖는 개도 없다. 대체 이 도시는 정체가 뭐지? 어째서 그 흔한 고함, 경적, 아이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나는 살짝 질투가 났다. 이 마음의 너름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했고, 누구 한 명의 성격이나 나 하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그들에게 불편함이나 단점을 찾아내려고 작정하면 없지 않겠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장점이나 좋은 점을 찾으려고 작정하면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의 고요함과 쾌적함 속에서 이질감과 외로움, 질투를 느꼈다.
천천히 걷는 걸음, 서로를 환대하는 인사, 끝없이 즐기는 듯한 대화. 따라 해보려고 해도 이미 내 몸속에서 혈액이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이곳의 평화가 참 부럽다. 동시에 한 달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의 터전에서 느껴질 조바심과 여유 없음이 벌써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