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튼 도서관(Newton Free Library)
동생은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보스턴으로 왔다. 그 말인즉슨, 미국에 살아도 주로 만나고 대화하는 사람은 가족과 주재원 사람들인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거나 따로 여행을 가지 않고서는 미국 사람과 만나서 대화할 일이 거의 없다. 마흔 가까이 살아오면서 동생이 여태껏 배운 영어라고는 ‘우리나라 사람답게’ 수능 영어가 전부다. 그마저도 대학 입학 이후로는 손을 놓았으니,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고 봐도 무관하다. 영어로 대화 한마디도 못 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 살러 간 것이다.
동생은 주재원으로 와서 이미 4년 차 생활인이 되었다. 혼자 방구석에서 책과 유튜브를 보며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하긴 하지만 실력은 거북이걸음만큼 느리게 늘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영어는 가능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4년을 산 것 치고는 여전히 영어 실력은 부족하다. 9살짜리 아들이 훨씬 잘했으니 말이다.
동생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 싶어서 신청한 게 ‘도서관 대화 수업’이다. 인근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정도 원어민 튜터와 함께 대화 수업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 튜터들은 대부분 직장을 은퇴한 사람들이었다. 지역사회와 주민을 위해 개인 시간을 내서 봉사와 재능 기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보스턴이라는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자원봉사자의 수준도 높았다. 고학력자들이 많다고 한다. 보스턴에는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람이 길에서 쓰러지면 바로 옆에서 뛰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의사라고. 미국의 명문대학교가 모여 있는 곳이니만큼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물가도 높은 나라에서, 그것도 고급 인력의 영어 회화 수업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때마침 오늘은 동생이 도서관 수업을 받는 날이었고, 수업 시간 동안 조카를 대신 봐줄 겸 우리 가족도 도서관을 구경하러 따라나섰다. 동생이 수업받는 곳은 ‘뉴튼 도서관(Newton Free Library)’으로 우리나라의 구립 도서관 같은 공공도서관이었다. 동네의 평범한 도서관 같아 보였는데, 무려 1870년에 개관한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90,000여 권의 장서를 갖춘 큰 도서관이었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방학이라서 그런지 벌써 꽤 많은 어른과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 있었다. 동생은 회화 수업을 받으러 2층으로 갔고, 우린 1층에 있는 어린이 도서실로 들어갔다. 미국에서 처음 와본 도서관이 신기해서 알 수 없는 책들이 꽂힌 서가를 탐험하듯 이리저리 구경했다. 가족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안타깝게도 그림체 구경만 하고 조용히 테이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아 아이들은 방학 숙제를 하고, 나와 남편은 집에서 챙겨왔던 책을 읽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괜히 분란이 될까 봐 조심했다. 아이들이 쑥떡 거리며 떠들려 하면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검지를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성한 도서관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낯선 소음이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우리 아이들 또래의 외국 아이들이 있었다. 세 명의 아이가 나란히 앉아 PC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기이한 모습에 놀라서 한참을 서 있었다. ‘도서관’과 ‘게임’이라는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하물며 그 컴퓨터는 자료 검색을 위한 컴퓨터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게임을 위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공식적인 게임석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그 아이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웃으며 놀고 있었다. 아기를 데려온 엄마는 아이가 바닥을 기어다니며 노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마땅히 가지고 놀 게 없는데도 마치 그곳의 의자와 난간과 책이 모두 놀잇감 같아 보였다. 근처 테이블에서는 엄마와 어린 딸이 함께 종이 한 장을 올려두고 학습 게임 같은 걸 하고 있었다. 마치 방문수업을 방불케 하는 다정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아이와 함께 학습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향한 적극적인 응원과 격려에 부모로서 배워야 할 가장 첫 번째가 저런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을 시키듯이 하는 공부가 아니라 배움은 즐거운 것임을 몸으로 배워가는 느낌이 들었다. 해내는 경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필요할 텐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해야 하는 압박감만 배우며 자라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배움의 괴로움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건 아닌지 반성도 함께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편에는 꽤 나이 든 어르신들이 계셨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스몰토크를 하기도 하고, 빌려 갈 책을 자유롭게 고르고 있기도 했다. 도서관은 단지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었다. 배우고, 놀고, 쉬어가는 곳이며 함께 삶을 공유하는 곳이었고, 마을 주민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어릴 적 나에게 도서관이란 ‘조용히 해야 하는 곳’, 그래서 ‘재미없는 곳’이었다. 지금은 조용한 게 좋아서 일부러 찾아가지만, 돌이켜보면 도서관이 조금 더 편하고 즐거운 곳이었다면 책과 더 일찍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책도 사람을 위한 곳인데 ‘책’만 중요한 곳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삶 속에 책’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잘 읽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을 흘기고 눈살을 찌푸리는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찾는 곳이며 더불어 책도 읽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은 조용한 곳이 아니라 즐거운 곳이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