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구체성
"여보, 오늘 밥 같이 먹을래?"
오늘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흔쾌히 좋다고 말했고,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밥 친구가 되어주었다. 같이 밥 먹기가 어려워서 오늘만 특별히 신청한 데이트가 아니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아니면 대부분 저녁은 가족이 다 함께 식사한다. 그리고 점심도 평일 중 세 번 정도는 남편과 둘이 먹는다. 내가 미리 식사를 준비해 두고 집에서 먹을 때도 있고, 도시락을 싸서 사무실로 갈 때도 있고, 동네 식당에서 외식할 때도 있다. 밥 먹을 가게도 몇 없는 작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남편과 먹는 점심은 늘 맛있고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가 이렇게 살기 시작한 건 일, 이 년 전부터다.
'도대체 그놈의 밥이 뭐길래!'
결혼 후 거의 10년 차쯤이었다. 주부로 살다 보니 밥을 챙기는 것도 먹어야 하는 것도, 귀찮고 성가신 지경에 이르는 날이 왔다. 가뜩이나 요리에 재주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가족들 먹이는 일이 가장 최우선의 할 일로 오래 살았으니, 그런 날은 언제 와도 결국엔 올 날이었다.
밥 스트레스는 아이들 방학이 되면 더 심해졌다. 엄마끼리만 알아듣는 통용어로 방학은 일명 '돌, 밥, 돌, 밥'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 점심, 저녁,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한 달 내내 그야말로 밥과의 전쟁이다. 두 아들은 한창 크는 성장기라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엄마, 배고파" 다. 삼시세끼에 중간중간 간식도 찾으니, 거의 하루 종일 먹을 음식 준비하고 대령하다가 하루가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를 열심히 키우며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밥'은 적이 되었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맛있는 먹거리가 아니라, 징글징글한 원수로 전락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자주 먹어야 하는 건가!' 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랬던 내가, 남편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한 건 심한 사십춘기를 겪고 나서였다.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온 삶 앞에 놓인 내 모습은 너덜너덜했다. 매일 눈물이 나고, 참고 살았던 마음들이 용암처럼 끓다가 폭발했다. 사춘기 없이 자라온 지난날에 보상이라도 하듯, 온 가족이 놀랄 만큼 심한 마음 앓이를 했고, 늦은 폭풍이 지난 후 이제야 조금 단단해졌다.
그러면서 시작한 게 '밥 먹기'다. 먹어야 해서 먹었던 의무적인 식사가 아니라, 밥 먹는 시간을 우리만의 추억으로 삼았다. 먹고 또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또 나누었고, 동시에 마음을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랬더니 그제야 밥 먹는 일이 좋아졌다.
요즘은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 저녁 식사 준비를 함께한다. 나는 양파, 호박, 두부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편은 옆에서 고기를 볶거나 조리 후 나온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목요일 저녁 한 끼는 '아빠데이'로 정해서 내가 잘 하지 않는 음식을 남편이 만든다. 아이들은 고객 취향 저격한 아빠의 요리를 무척 좋아하고 잘 먹는다.
우리 가족의 일상이 이렇게 변하고, 지금은 가족과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고 즐겁다. 메뉴를 정하는 게 여전히 고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밥 먹는 시간을 어떻게 만들지 우리끼리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밥은 먹었어?", "언제 밥 한 끼 해."라는 인사가 유독 흔한 우리나라다. 우리는 왜 이리도 서로의 밥을 살피며 사는 걸까? 피죽도 못 먹어 굶었던 시절이 몸속에 살아 남아서 그런 걸까? 밥을 이야기하는 인사는 마치 "잘살고 있지?", "잘살고 있어야 해."라는 생명의 인사 같다. 하지만 밥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해 주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관계를, 삶을 채우는 행위다. 우리의 삶 속에서 밥은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밥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엄마의 밥을 먹고 자란 우리는, 밥을 먹으며 사랑을 먹었을 테고, 결국 밥을 먹는다는 건 사랑 안에서 사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