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by 밝음

‘공수래공수거, 공수래공수거, 공수래공수거, 공수래공수거 ……’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휴대전화를 켜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적는다. 그리고 아저씨 옆에 있는 나는, 사랑하는 할머니가 한 줌의 재가 되어가는 곳을 응시하고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은 세상에 올 때 오직 자기 몸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도 오직 자기 몸 하나만 가지고 죽는다. 결국 ‘나’ 외에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순간 잠시 내 것일 순 있지만,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돈, 물건, 직위, 명예. 더 나아가 이름, 모습, 자아정체성까지도. 모두 다, 이 땅에 와서 잠시 잠깐 만들고 빌려 쓰는 것뿐이다.

더 깊은 진실을 따지자면, 애초에 몸도 만들어져 태어났고 죽을 땐 그마저도 가루가 되어 사라지니, 그 몸에 깃든 어떤 것, 그걸 영혼이라고 해야 할까? 에너지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공수래공수거’가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내 삶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것도 내 것이 아니고’ ‘저것도 내 것이 아니고’. 다 내 것이 아니다. ‘이것도 생겼고’ ‘저것도 받았고’ 모두 선물처럼 내게 와 있다. 빈손으로 왔는데도 가진 게 정말 많다. 다 놓고 가야 하는 데 가진 게 너무 많다. 나를 길러준 세 사람이 모두 떠나고서야, 세상이 바로 보인다.

돌아보면 나의 노력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감사한 줄 몰랐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더 갖지 못해 속상했고, 더 갖고 싶어서 안달했다. 이미 가진 게 대단한 줄 몰라서 하찮게 여겼고, 충분히 가진 게 많은데도 나눌 생각보다 받을 생각만 더 했다. 영원히 살 줄 알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줄 알고 했던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걸 받을 자격이 있나?’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내게 질문했다. 늘 다른 사람과 비교했다. 내 삶은 왜 남들만큼 가지지 못했고, 불행만 가득하냐고 하늘을 원망했다. 그런데 처음 태어났을 때의 빈손과 비교했더니 이미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 땅에 태어나 했던 모진 말과 행동, 수많은 잘못과 어리석음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이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 태어나 누린 수많은 것들,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수많은 사람. 내가 끼쳤던 해악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알고 보니 수없이 용서받았고, 다분히 이해받았고, 넘치게 사랑받았다. 내가 이것들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태어났다는 것.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그럴 자격이 주어졌다. 그런데도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아저씨처럼 노트를 꺼내 글을 끄적여본다.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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