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양씨의 아침일기

품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by 밝음

기존에 가진 습관 하나를 바꾸기 위해 2월부터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양 있는 여자 되기’. 그런 노력을 하기로 했다는 건 결국 교양이 없다는 뜻이다.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라는 뜻을 가진 교양은 개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학습이 따라야 하며 마침내 품위라는 행위로 이어져야 완성된다.

주변에 교양 있는 언니들이 몇몇 있다. 감히 따라 하려야 따라 하기도 힘든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결코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몸에 밴 것이다. 보고, 배우고, 지도받고, 실천해서 그런 사람이 되게끔 자신을 단련한 결과일 텐데. 언니들을 좀 따라 해보고 싶지만, 이번 생은 그른 것인가, 싶은 마음이 더 앞선다.


나는 경상도에 태어나서, 무뚝뚝한 장녀로 살았다. 마음은 말로 전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임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그 마음조차도 대부분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 혼자 간직한다는 걸 눈치로 알아챘다. 할머니가 아빠를 끔찍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지만 대부분의 표현이 밥상 차려주기와 잔소리였으니 말이다. 성장배경부터 이미 나는 마이너스 출발이다. 이제 여기에 마이너스를 더할 천성을 가져와 보겠다.

어릴 때부터 아무 길바닥에 잘 앉는, 좋게 말하면 털털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필이면 성별도 여자여서 내 단점은 더욱 빛이 났다. 태생이 교양 없는 내가 운 좋게도 아들 둘을 낳는 쾌거까지 얻어, 가뜩이나 없는 교양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아들 낳은 엄마의 뇌에서 남성의 Y염색체가 검출될 비율이 63%라는 과학 결과도 있다) 그리고 더욱 비관적인 것은 나날이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져 내 여성성은 갈수록 하강할 것이다.


하지만 난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결코 무정한 사람은 아니다. 요즘 인기 있는 책들에 의하면 다정한 사람이 이기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하던데(이해인,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 브라이언 헤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솔직히 내 입으로 다정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흔히 말하는 츤데레(‘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란 일본어)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다.


마흔 넘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이런저런 나를 들여다보면서 삼 년을 흘려보냈다. 다음 단계 도장 깨기처럼 올해 들어 새롭게 거슬리기 시작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의 ‘교양 없음’이다. 교양은 없지만 나름 순수하고, 순박함이 매력인 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억척스러운 아줌마 한 명만 남아 있었다. 십 대를 지나 이십 대를 거치고 삼십 대까지도 그냥 태어난 대로 살기 바빠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중요하지도 않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사십 대에 들어서니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모두 나를 ‘김교양’씨로 불러주길 바랍니다.”


2월 1일 자로 남편과 아들 둘에게 그렇게 선포했다. 남편은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제발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듯했고, 아들들은 그냥 평소대로 살지 왜 그러냐는 어투였다. (왠지 그래봤자 안 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 듯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내가 한 선택이었다.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그 결심을 곧장 실천으로 옮겼다.


일단 나는 말이 빠르고 드셌기 때문에 천천히 살살 말하는 연습을 했다. 양쪽 입꼬리를 살포시 올리며 웃는 표정을 지었고, 말끝에는 되도록 ‘요’자를 붙이며 급발진하려는 성미를 다독였다. 하루 동안 그렇게 해보았더니 나도 그런 내가 훨씬 편했다. 마음이 널뛰지 않으니 치솟는 에너지에 타격받지 않아서 좋았고, 생각보다 화낼 일이 없는데, 습관적으로 그래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시도는 작심삼일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에 내 노력은 둘째 날부터 자연스럽게 틈틈이 무산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무슨 행동을 하면 순간적으로 답답한 마음에 “아니, 그걸 왜~”하며 곧장 목소리가 커지고, 뒤이어 주저리주저리 잔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순간 남편이 “여보, 교양!”이라고 채찍질해 주어 멈출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아차차! 하며 머리를 잽싸게 흔들어 잘못 빙의된 교양 없는 여자를 내보내고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들 둘이 하던 장난이 싸움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도 김교양씨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 꼭 한마디하고 나서야 아차! 싶어 머리를 흔들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노력을 거듭할수록 내 교양 없음이 얼마나 강력한지 더욱더 드러나고 있어서 포기를 앞둔 삼 일차 아침이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포기는 말자는 생각이 든다. 교양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될 것은 아니고 나는 보고 배운 것도 없으니, 서두름 없이 긴 호흡으로, 실패하더라도 다시 머리를 쥐어흔들며, 차곡차곡 김교양의 삶을 쌓아보려 한다. 20년이 지나 60대가 되면 분명 지금의 나를 기특히 여기리라.


공주들의 필수 덕목 교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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