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여러가지 법칙이 있다.
나이 때마다 갖게 되는 배움과 변화가 모두 다르다. 이십 대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시기였다면, 삼십 대는 기초를 다지고 내 것을 만드는 시기였고, 지금, 사십 대가 되면서 가장 크게 배우고 변한 건 바로 ‘인간관계’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나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사람에 대한 안목도 생겼다. 항상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다가 내가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고, 밖을 향한 질타만 하다가 내 꼴을 스스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새로운 인연을 사귀는 게 중요한 만큼, 새로운 인연을 함부로 맺지 않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곁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는 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쉬운 건 아니지만 말이다.
평생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었다. 돌아보면 내 인간관계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인간관계에 너무 큰 에너지를 썼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했고,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삶의 가치관이 이러니 학급에서든, 직장에서든, 모임에서든, 마음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과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만난 사람들을 모두 의미 있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많은 시간 관계에만 힘을 썼고, 그래서 긴 시간 괴롭고 힘들었다. ‘사람’이 중요해서 나와 내 인생을 탐구하는 시간보다 관계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었고, 관계에 계속 집착했다. 하지만 관계에 집착할수록 관계는 나를 힘들게 했고, 좋은 관계를 맺는 일도 점점 더 요원했다. 사람과 관계에 이런저런 실패와 실수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인간을 사랑한 게 아니라 인간에게 집착했다는 것을. 나에게 필요한 마음을 내가 주지 못해서 그걸 관계 속에서 채우려 했고, 내 마음의 독은 누구도 채울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관계의 지옥에서 해방되었다.
삶에서 사람이 중요했던 나는,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을 믿고 살았다. 주변 사람이 잘되면 너무 잘됐다며 함께 기뻐하고 슬픔이 찾아온 사람에겐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마음 썼다. 그런데 살다 보니 기쁨과 슬픔도 가려서 나누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T.P.O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하듯, 감정도 T.P.O에 맞게 나눠야 하는 것이다. ‘T.P.O’는 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을 줄인 말인데, 복장의 적절함처럼 감정을 나누는 일도 적절함이 필요한 일인데, 그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그리고 하나를 더 추가해 어떤 사람(Person)에게 나누는지가 중요하다. 나와 연결성이 떨어지는 대상에게 마음을 이야기해 봤자 그 사람은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공감이 힘들 것이며, 지금 그런 말 할 상황이 아닌 자리에서 한다면 공감해 주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상황이나 상태가 내 감정과 괴리가 크다면 같이 그 마음을 느끼기 힘들고, 축하와 위로를 진심으로 전할 인격이 아닌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내 기대와는 다른 반응을 받아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기쁨은 나누면 질투의 대상이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기도 하고, 기쁨은 나누면 상처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부담되기도 한다. 현실이 이렇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렵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또 하나의 삶을 기술이기도 하다.
모든 감정에는 그것을 나눌 적절한 때와 장소, 상황, 그리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옷차림에 ‘T.P.O’가 있다면, 감정의 나눔에는 ‘T.P.O.P’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