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서 못 울어본 K 장녀의 슬픈이야기
나는 어릴 적에 사람들로부터 ‘의젓하다.’, ‘야무지다.’,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그런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남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기분이었고, 알게 모르게 모정의 우월감도 느꼈다.
반면에 두 살 터울인 내 여동생은 항상 ‘시근머리 없다.’, ‘철딱서니가 없다.’, ‘눈치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동생이 그런 말을 많이 들을수록, 역으로 나는 더 알아서 행동하고, 더 눈치 있게 행동하고, 두 발 앞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했던 행동을 후회한다. 의젓함 따위 개나 줘버려야 했는데. 뭣 하러 그렇게까지 살았나 싶다. 가지고 살았던 습성을 버리려고 무수히 노력해서 지금은 꽤 나아졌지만,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온 만큼 바뀌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요즘 ‘K-장녀, 특’이라는 제목의 K장녀밈이 떠돈다. 장녀들의 특징을 영상으로 만든 거였는데, 혼자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장면이다. 장녀는 항상 먼저 앞장서서 상황을 살펴보는 특징이 있다. 누군가는 왜 저러나 싶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걸 보며 눈물이 난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시간 속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 그중에서도 최고로 빠른 시간 속에 사는 장녀들의 삶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온라인에 떠도는 K-장녀의 특징은 이런 것들이 추가로 더 있다. ‘늘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한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싫다는 표현을 잘 못한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고, 약속이나 규정을 어기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불만이나 불편도 꾹꾹 누른다.’, ‘겉으로 볼 때는 의젓하나 상처를 쉽게 받고 오래 간다.’
먼저 태어난 죄로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의젓함을 강요받고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불쌍한 영혼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처음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동생이라는 경쟁자가 태어났고,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운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착한 언니’, ‘멋진 누나’가 되기로 한 것이다. 말 잘 듣고, 착하고, 의젓한 나를 부모님이 사랑해 주니 처음에는 좋았는데,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나의 조종에 나는 나를 잃었고, 결국 애쓰고 노력하는 나만 남고, 투정 부리고 징징거리는 나는 무의식의 깊은 구석으로 내몰려 사라진 것이다.
나는 드러날까 봐 겁나는 본성을 이렇게 꼭꼭 숨겨두고 사는데, 동생은 가감 없이 자유롭게 표출한다. 그 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미친년’. 하지만 나만은 안다. 동생의 철없는 꼴을 미친년이라고 천대하는 이유는 나는 참고 있어서 하지 못하는 짓을 동생은 마음껏 하는 게 배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꼴이 보기 싫은 것이다. 나는 참는데 너는 왜 마음껏 하느냔 말이다. 화딱질 나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상한 짓을 해대며 살 배짱도 없다. 칭찬 듣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욕 듣는 건 정말 싫기 때문이다. 내 욕구 충족시키겠다고, 내가 원하는 거 얻겠다고 ‘괜찮은 애’, ‘착한 애’, ‘멋진 애’라는 정체성을 이제 와서 버리는 건 어차피 바보 같은 짓이다. 어쩔 수 없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지. 부글부글, 부글부글. 그래서 결국 첫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으로 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참았던 감정과 분출하지 못한 화는 결혼하고 육아하며 터진다는 사실이다. 펑! 평생 숨기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 자신을 닦아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 천성이 매우 선한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수 있겠으나,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 엄마, 아빠한테 부리지 못한 어리광과 사춘기 발작을 배우자에게 선사했다. 유감스럽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죄는 평생 함께 살면서 갚으려 한다. 참으로 미안하고, 감사한 남편.
아이다운 아이로 자라는 것에 비록 나는 실패했지만, 좋은 유산이 아니라면 최소한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신경을 쓴다. 나에겐 세 살 터울의 아들 둘이 있는데, 정말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형제 서열 육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은연중에 형인 첫째에게 더 바르게 행동하기를 강요하고, 막내인 둘째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그만큼 훈육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둘이 머리를 붙잡고 각성한다. ‘OO이도 그래 봤자 어린이야.’
아직 커 가는 아이임을 잊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형이라는 이유로 더 나은 것을 바라는 모자란 마음이 생긴다. 대대로 내려온 유교 사상이 몸에 배서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비교 때문이다. 아이들을 각각의 존재로 보아야 하는데, 옆의 형제와 비교해서 더 큰 아이와 더 작은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하나만 지키자는 우리 부부의 철칙이 있다면 ‘절대로 동생을 돌보라고 시키지 않는다.’다. 학교나 학원에 갈 때 ‘동생 좀 데려가’, ‘동생 좀 챙겨’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건 부모의 직무 유기니까. 형이 없다면 그건 당연히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다.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딱 하나만 해보고 싶다.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생떼 부리기’. 친구 중 한 명은 어릴 때 매일 시장 바닥에 누워서 울었다고 한다. 난 그게 너무 부러웠다. 몇 번이라도 해보고 착해 질 걸. 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