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나는 항상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모두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외쳐도, 무더운 여름이 되어도, 내 주문은 언제나 한결같이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세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당겨서’라고 설명할 수밖에. 늘 손발이 찬 편이어서 그런지 나는 얼어 죽을까 봐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 얼음물에 섞여 진했던 커피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도 싫고, 커피의 향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것도 싫다.
매번 이렇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하다는 맹점 때문에 가끔은 곤란을 겪기도 한다. 커피를 마실 땐 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니, 처음엔 따뜻했던 커피가 정신을 판 사이 차갑게 식어있을 때가 있다. 여전히 따뜻할 줄 알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만 뻗어 무심결에 들이켰다가, 커피의 냉랭함에 화들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던 이유는 사라지고, 잔반 처리하듯 쓰고 차가운 커피를 꿀떡꿀떡 삼킨다. 먹기 싫은 한약을 코 막고 삼키듯이. 어쩔 수 없이.
지금은 1월, 계절은 겨울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 부산이라 하지만 오늘 바깥 기온은 2℃. 창가에 앉아서 그런지 몇 모금 즐기지도 못한 따뜻한 커피는 금세 차갑게 식어버린다.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와 섭섭해진 마음을 보며, 어느 날 식어버린 지나간 마음들을 떠올린다.
나는 아주 조금씩, 서서히 마음을 여는 유형의 사람이다. 겁이 많은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한 번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한없이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낯선 사람은 일단 경계하고 사람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런데 종종,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처음 만나도 원래 알던 사이처럼 친밀감을 쉽게 표현하고,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커다란 마음을 펼쳐낸다. 서슴없이 다가와 주고, 강렬하게 좋아해 주는 그 마음에 처음엔 놀라지만, 나와는 달리 적극적인 그 사람을 결국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게 내 인생의 정해진 순서였다.
하지만 쉽게 타오른 만큼 쉽게 마음이 식는 것도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식어버린 커피의 놀람처럼, 갑자기 식어버린 마음에 늘 당황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주고, 여러 사람에게 주고, 주었던 마음도 쉽게 되돌렸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차이의 문제였다. 그들과 다르게 나는 마음의 방향 전환이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뜨거움이 갑자기 식으면, 나는 당혹감을 안은 채 오랜 시간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식히고, 겨우겨우 그 관계에서 빠져나왔다.
뜨거운 커피의 향과 맛이 좋은 만큼 식어버린 커피는 더욱 차갑게 느껴지듯이, 뜨거운 마음이 좋은 만큼 차갑게 변한 마음은 나를 힘들게 했다. ‘흥, 싫으면 말고!’하며 쿨하게 보내주면 그만인 관계에서조차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별로인 걸까?’를 곱씹고, 곱씹으며 쓴 커피를 처리하듯, 혼자서 그 관계를 소화했다. 그 뜨거움을 좋아한 건 어쨌든 바로 나니까.
요즘은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면 5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두었다가 마신다. 식어버려 차가운 커피 못지않게 뜨거운 커피를 삼키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찬 바람 부는 겨울이지만 나는 뜨거운 커피가 아닌 따뜻한 커피를 즐기고 싶다. 내 곁의 사람들도 이제는 너무 뜨겁지 않고 조금은 미지근한 듯한 따뜻함을 가진 사람들이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의 뜨거움과 차가움에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 좋겠고, 함께 우리를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 따뜻한 마음의 향기가 조용히, 그리고 멀리 퍼져나가면 좋겠다. 커피가 식기 전에 서로의 눈을 맞추며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창문 밖엔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