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고민이라고 하니 고민이 되지
누군가에게 "최근에 생긴 고민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응? 고민? 없는데?' 그것이 내 마음의 소리였다. 마음이 하는 대답에 나도 놀랐다. 왜냐하면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세상살이 자체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편히 살고 싶은데 늘 근심 걱정이 넘쳤다. 내 삶은 해야 할 일 투성이 같았다. 누군가 인생은 숙제라고 했던가? 이 숙제가 그 숙제는 아니겠지만, 내게 펼쳐진 삶은 온통 해야 할 숙제거리만 넘쳐 보였다. 이 숙제를 해치우면, 저 숙제가 왔다. 미룬다고 없어지는 숙제도 아니었다. 이전 숙제가 아직 밀려있는데 다른 숙제가 나왔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숙제도 아니었다.
그런 내 삶이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해야 할 숙제만 넘치는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숙제하기를 관두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숙제를 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더니 숙제가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숙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들을 숙제라고 여겼기 때문에 숙제가 된 것이었다.
'진짜 요즘 나에게 고민이 없나?'라고 생각을 하며, '고민'이라는 정확한 단어가 궁금해졌다. 고민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이라고 되어있었다. 고민이라는 게 그런 단어인 줄 몰랐다. 그냥 조금 근심 걱정하는 것, 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는 마음 정도로 생각했다.
고민의 정의를 알고 나니 나에겐 현재 고민이 없다는 게 더욱 확실했다. 괴로워하고 애를 태우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문제이거나 숙제로 여기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달라졌다. 그런 것들에 집중하기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데에 관심과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 걱정의 96%가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고민이 깊다면 결국 더 나은 게 뭔지 선택의 기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어떤 선택이든 내가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고민의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내가 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할 일들이다.
나에게 어떤 고민이 찾아온다면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 '고민이 뭐야?' 그리고 그 고민의 진짜 이유가 뭔지 다시 물어보자. '어떤 부분이 고민인 거야?', '어떻게 하고 싶니?', '무엇을 원해?'라고 말이다.
내가 하는 고민이 진짜 고민이 맞는지 혹시 고민거리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쿨하게 선택하고 다음의 삶을 맞이하면 될 부분은 아닌지, 고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닌지. 그 고민에 대해 고민해 보자.
4%의 고민은 신중하게 하되, 96%의 고민 시간은 고민을 그만두고 삶을 살아가는 데 쓰는 것이다. 고민만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앞의 생에 기대를 안고 즐겁게 선택해 보자. 어떤 모양의 삶이 펼쳐지든 상관없다. 내가 그려낸 내 삶이니까.
고민을 만든 것도, 고민을 하는 것도, 고민을 없애는 것도 모두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