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자매
나에겐 두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나에겐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셈이다. 그런데 그 유일한 혈육마저 지금은 신랑 직장 때문에 해외에서 거주 중이다.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 그림으로 그려져 가는 내 삶을 보며, 나의 영혼은 대체 얼마만큼의 자유를 꿈꿨기에 이런 생을 살아가나 싶을 때도 있다. 자유는 스스로가 즐길 땐 자유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땐 외로움과 허전함으로 이름이 바뀌어버린다. 그래서 그 자유가 때론 복일 때도, 때론 슬픔일 때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누림으로써 포기해야 할 것이 있고, 얻음으로써 감당해야 할 것들이 생기는 아이러니하고 당연한 삶의 이치.
하나뿐인 여동생이 시차가 12시간이나 나는 곳에 있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게 동생이다.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심리적 거리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곁에 있으면 참 성가시고 신경 쓰이게 하는데, 없으면 또 허전하고 아쉬운 나의 자매.
"수지!!"
아빠는 늘 우리를 한 세트처럼 부르셨다. 수현이, 지현이라는 각자의 이름 대신 우리를 묶어서 그렇게 부르신 것이다. 어릴 적 사진첩을 펼쳐봐도, 기억 속의 장면들을 뒤져봐도 늘 내 옆엔 동생이 있었다. 사람들을 살갑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동생을 돌보지는 않았지만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는 동생이 가끔 불편했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힘이 될 때보다는 무언의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늘 나에게 마음을 기대는 동생이 싫고 불편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에게 더욱 의존하는 것 같았다.
"언니야,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언니야, 나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지?"
동생은 자신이 해야 할 결정을 늘 나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나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버거웠다. 나도 힘들게 살아가는데 그 마음을 받아주고 들어줄 여백이 나에겐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일을 알아서 하는 성격이다. 내 고민이나 걱정을 가족들에게 나누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당연한 삶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대부분의 고민은 가족 때문이었다. 힘든 일도 가족 때문이었고, 어려움도 가족 안에서만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있다면 친구에게 하게 되었다. 동생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집에서 첫째 딸로서 감정적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이 난 싫고 버거웠다.
"엄마! 난 쟤가 진짜 싫어."
"어떤 게 그렇게 싫어?"
"몰라 그냥 전부 다 싫어. 진짜 싫어."
10살인 첫째는 7살 동생을 보며 나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첫째 동병상련이라고 첫째로서의 고충과 한 지붕 아래 부모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형제의 존재가 어떻게 여겨질지 200%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보지 못한 우리 자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호야가 있어서 네가 늘 더 즐겁고 힘이 되기도 하잖아."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지 못하다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둘이어서 더 좋은 점들이 당연한 듯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자매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어쩔 땐 귀찮고 성가시기까지 한 존재이지만 그런 동생이 있어서 그래도 분명 힘이 되었다. 엄마가 계시지 않을 때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이 있어서 가능했고, 아빠가 아프실 때나 보내드릴 때도 분명 둘이어서 모두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급하고 어려운 순간들 모두 동생이 있어서 그 힘듦이 절반이 되었다.
그런 생각도 해본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그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더 큰 슬픔이 될 수 있겠다고 말이다. 앨범 뒤져보면서, 그때 그랬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큰 재산이다. 유일하게 나와 같은 시절을 경험한, 그 과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게 바로 형제자매다.
어쩌면 다른 외동들에 비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절반을 희생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둘이어서 더 좋았다고 확신한다. 잘났다고 콧대 빳빳하게 세우는 언니였지만, 그래도 동생이 있어서 흔들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동생이라는 존재는 특별한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었다.
이젠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애들 키우는 이야기와 세상살이에 대해 수다를 나눈다. 자매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된 나의 자매. 평생 배반하지 않을 귀한 친구가 나에게 있는 것이다. 혼자보단 둘이어서 좋은 우리 자매와 우리 집 형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