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척도

무엇으로 사랑을 측정하시겠나요.

by 밝음

어릴 적 엄마는 우리에게 헌신적이었다. 특히 나는 그 혜택을 많이 받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거부할 수 없는 특혜. 받는 사람의 의향과는 무관한 특혜. 하지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보이는 척도들로 엄마의 사랑을 가늠해 본다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나에게 정서적 구멍은 바늘구멍만큼도 없어야 한다. 늘 때때마다 정성 가득한 음식들을 챙겨주셨다. 매끼 새로운 반찬들이 준비되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90년대임에도 직접 만든 햄버거와 중국집 요리사에게 직접 배워오신 탕수육을 간식으로 먹었다.


씻기고 입히는 것도 최선을 다하셨다. 예쁜 옷, 예쁜 머리로 늘 꾸며주셨다. 재롱잔치 때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구해오신 덕분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되었다.(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된 기분이었음)


공부시키는 일도 열성이셨다.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엄마도 함께 공부하시면서 봐주셨다. (초시계를 들고 있는 엄마 때문에 나는 눈높이수학을 아직도 싫어한다.) 초등 시기에 내가 다닌 학원만 열 군데가 넘었다. 주말마다, 방학마다 나들이나 여행까지도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극진한 사랑을 받은 것이다. 직접적인 행위와 시간 투표여 사랑이라면 엄마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은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내 머리는 안다. 그런데 가슴은 이상하게도 받는 만큼이 사랑이라는 사랑의 척도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큰 사랑을 받는 동안 내 안에 자꾸만 쌓아가는 신념이 있었다.

"아, 나는 부족한 사람이구나."


늘 나를 위해 애써주는 엄마의 사랑으로 나는 나에 대한 왜곡된 자아상을 세워갔다. 늘 노력해야 하고, 애써야 하고, 꾸며야 하는 삶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내가 원하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받아야 하고 행해야 하는 나는 내가 점점 사라졌다. 주는 사람이 주고자 하는 사랑과 받는 사람이 받고 싶어 하는 사랑이 너무도 달랐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된 것이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서툴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으로 길렀다. 아이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바랐다. 어린 나이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더 많이 갖도록 했다. 어려움이 있어도 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었다. 무조건 좋은 것을 제공하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환경조건 안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스스로 탐색하고 시도하기 기를 바랐다. 그게 내 사랑이었다.


아이가 어릴 땐 몰랐었다. 10살이 넘어가고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가 느끼는 사랑의 척도는 얼마만큼 직접적인 관심을 주고 무엇을 제공해 주느냐였다는 사실을. 아이를 존중해서 그냥 두었던 것들이 아이에게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일들이었다.


너무나 사랑하는데 내 사랑만큼 상대방이 느낄 수가 없다. 상대방의 사랑만큼 내가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사랑의 모양과 색깔이 다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마음을 상대방이 온전히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영원히 불가능하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어떤 사랑을 주든 사랑을 느끼는 건 느끼는 자의 몫이다. 상대방의 모습을 근거로 내 안에 있는 나의 사랑을 느낄 뿐이다.




영원히 서로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내 사랑을 설명하는 것. 서로 마음을 이야기 나누는 것.

내 사랑의 모양은 어떤지, 내가 원하는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받고 있지만 내가 느끼는 사랑은 그러지 못하다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다소곳이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사랑의 척도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왜 모르죠?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알잖아요."

"아니오. 당신이 보이는 모습은 내게 사랑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으로 사랑이라는 걸 느끼는 사람인 거죠?"

"지금 내가 당신에게 주고 있는 사랑의 모습이 내 사랑이에요."


진정한 사랑의 척도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하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사랑의 척도를 얼마만큼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같이 있겠다는 무서운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