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무능력자의 실수학개론

by 밝음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실수는 기회이고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밑바탕이 된다고도 한다.


이렇게 보면 실수는 꽤나 좋은 녀석 같다. 분명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실수를 한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니 분명 실수는 경험해 볼 만한 자산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수 무능력자다. 실수를 할 줄을 모른다. 실수 한 경험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도전을 잘하지 않는다. 마음이 있다고 선뜻 시도하지 않는다. 단순히 실수와 실패가 무서워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잘 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니 그럴 가망이 있는 일들은 애초에 하지를 않는다. 무엇을 욕망해야 실수도 하고 배움도 있고 성취도 있을 텐데 하필이면 무탈이 욕망이라 참 이상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예전에 모 댄스 경연 프로그램에서 비추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고 내 삶을 되돌아본 적이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해내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에서 더 과하게 설정을 해서 스토리 있게 만들어냈다 해도 그 마음과 에너지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런 마음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었다.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애를 쓰고 감정의 격동을 겪는 모습이 대단해 보이긴 하나 해본 적 없어 무슨 느낌인지 공감을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 분명 열심히 살았던 건 맞다. 하지만 그게 내 생 안에서의 최선이었냐고 물으면 아니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무엇을 최선이라고 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긴 하겠지만 돌아본 내 삶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거나 당당하게 최선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현실 만족이 재능이고 무탈이 욕망이라 실수 무능력자가 되다니. 그런데 그냥저냥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사는 건 또 그렇게 나쁜 걸까.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사는 건 과연 이 삶에 대한 모욕이거나 사치인 걸까.


나는 나를 학대하고 싶지 않다. 뭔가를 더 탐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지금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게 좋다. 마당발에 뛰어난 인싸가 되는 것보다 몇 안되지만 다행히 닿아있는 몇 안 되는 나의 인연들과 깊이 관계하는 인싸도 아니고 아싸도 아닌 그냥 나이고 싶다.




실수 무능력자는 오늘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실수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돌다리를 열 번 정도 두드려 본다. 그게 내 생의 방식이다. 실수를 통해 배움과 성장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실수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배움과 성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잘 듣는 것, 잘 살펴보는 것,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 오래 생각하는 것. 많은 예측을 해보는 것.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시작해 보기. 작게 시작한 경험으로 경험의 경험을 쌓고 시행착오를 겪고 변화를 꿰해보면서 느리게 배워가는 것이다. 빨리 뛸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배우는 것이다.


무조건 무릎팍 깨져야 잘 뛸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실수의 유무가 아니라 혹여나 발생한 실수에 대한 나의 태도일 것이다. 실수했다고 자책을 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진 말자. 실수에 관심두지 말고 내가 뛰었다는 사실에 관심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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