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마음의 불일치에 대하여

또 한 해 먹어가는 나이 앞에서 속도를 늦추는 내 마음

by 밝음

12월도 벌써 중반이 되었다. 어떤 하루, 어떤 한 해로 채웠든 우리는 공평하게 세월을 입는다. 나이라는 숫자를 늘리는 데에는 아무런 자격이 없다. 그런데 삶을 잘 살아가는 것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릴 땐 나이만 먹으면 저절로 잘 살게 되는 줄 알았다. 알아서 지혜가 쌓이고 덕이 길러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들을 보면 그냥 대단해 보이고 큰 사람 같았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나이와 살아가는 능력치는 전혀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나이를 먹어가지만 사는 게 쉬워지기는커녕 더 오리무중인 내 삶을 보아도 그렇고, 나이를 먹어도 더 약해지고 무력해지는 더 큰 어른들의 삶을 보아도 그랬다.


나이가 자격이 될 수 있고 능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어서 나이를 잽싸게 먹어치우고 삶의 지혜의 정점을 찍고 싶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뱀파이어처럼 영원불멸을 꿈꾸며 수명을 늘릴 궁리를 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영생은 바라지 않는다. 인생 통달의 능력치를 바랄 뿐이다. 지난밤 고뇌한 마음처럼 나의 존재가 하얗게 새어버려 공기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괜찮다. 마음으로 만든 괴로움의 세상 속에서 허덕이는 어린양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진득하게 한 해 한 해 나이만 먹어가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어갈 거라고 생각했던 오산은 백 프로 적중했다. 아무리 요즘 마흔이 예전 서른 즈음이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기를 기대했던 불혹은 아무래도 이름표만 주어져 있는 것 같다.




불혹이 된 아이는 어릴 적에 속담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벼는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었다. 그 말에 제 할 일이 무엇인지 깃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싹도 틔워보지 않은 영혼이면서 세월을 안아 겸손하고 진중해진 아름다운 황금벼밭의 영혼이 되기를 꿈꿨다. 어린 눈에 그게 멋진 인생으로 비추었나 보다.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야 그때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걸 알아챘다. 차라리 뻣뻣함에 불편을 겪을지언정 푸르고 파아란 청춘의 시절을 갈망하는 욕망 가득한 벼가 되기를 꿈꾸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걸 늦게 깨달았다.


나기도 전에 익기를 바랐던 아이는, 오래도록 무엇들을 피어나지 못하게 꼭꼭 숨겨두고 있었던 걸까. 여전히 겉으로 발화하지 못하고 속에서 이삭을 삭이고 있다. 모든 과정과 계절을 난 다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고개 숙임을 무언의 마음과 최적절의 태도로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푸르러야 할 때 푸르지 못하고, 익어야 할 때 익지 못해 속이 빈 이삭은 철철철 초라한 소리를 낸다. 이젠 숙이기 싫다고 영원히 숙이지 않겠다고. 양분 없고 쓸모없어 데려가는 이 없어도 영원히 익지 않고 철없이 살고 싶다고 황금벼밭에 홀로 꼿꼿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엄마 떠난 후 말 잘 듣는 청개구리처럼. 세월을 입고서야 세월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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