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뭘 하고 삶을 꾸렸는지 돌아보는 생각이 많다. 다음 해에 무엇을 어떻게 하며 보낼지에 대해 내다보는 생각도 많다.
나는 생각쟁이다. 한 가지 행동을 하기 전에도 여러 번 이런 경우 저런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떤 일이 생기면 왜 그랬을까 무엇이 필요할까 온갖 생각을 다한다. 잡생각도 많이 하고 사유도 많이 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릴 때는 생각하기보다 무언가를 느끼며 살아가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커갈수록 느끼는 순간보다 생각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조심스러운 것들이 많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지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생기면서 생각은 더 많아졌다.
올해는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다. 평생 생각하기만 바빴지 내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하는 자로서의 나와 생각하는 나를 관찰하는 자로서의 나를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들여다보았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는구만.'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루종일 해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어떤 때는 과거에 갔다가 어떤 때는 미래에 갔다가 난리도 아니다. 그러다가도 눈에 뭐가 보이면 보이는 그것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무슨 소리가 들리면 들리는 소리를 따라 생각도 따라갔다. 같은 느낌을 고작 몇 번만 경험해도 그 일을 쉽게 단정해버리는 생각이 있었다. 길지도 않았던 이 생 안에서 알게 된 정보와 경험으로 오류 가득하고 편협한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 다 내가 한 것이었다. 내 발을 걸어 넘어트린 것도,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도,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것도, 나를 가로막은 것도. 알고 보니 모두 내 생각이 한 일이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나에게 그냥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버린 그 세상 속에서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웃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생각이라는 게 참 우스웠다. 인간이기에 생각을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생각이 다인 줄 알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아니라 생각을 따라 살고 있었다. 내가 생각이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생각을 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실상은 생각 아래에서 생각을 받들어 모시고 생각을 어쩌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 그것 참 요물이다. 내 나름대로 분명 현명한 생각이라고 생각했었고, 옳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을 관찰한 생각에 대한 결론은 '생각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모든 생각은 결국 생각일 뿐이다.'였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는 자신의 소설 『정오의 악마』에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내 생각이라는 나만의 생각, 나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반응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커지니까.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꼴대로 단편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말도 웃긴 말이다. 생각이라는 것, 내 가치관과 신념이라는 것도 모두 여러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생각 중에서 내가 선택한 한 생각일 뿐이다. 내 생각대로 산다고 해서 삶이 무조건 나은 방향으로만 나아가지도 않는다.
평생 가지고 있었던 생각도 한순간 변한다. 어떤 경험으로 인해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생각이 되거나 정반대의 생각으로 변할 때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서 그 생각에 갇혀서 다른 것을 못 보거나 무엇을 놓칠 때도 많다. 생각이라는 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느낀 감각과 해온 경험으로 인해 만들고 선택되어 온 것들이다.
'사람 바뀌기 힘들다.'는 말도 결국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 힘들다는 말이다. 오래도록 써온 생각하는 패턴을 벗어나는 게 힘들다.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 생각의 색깔은 거기서 거기다. 경험에 대한 단편적인 판단들, 욕구에 따른 기준들, 두려움으로 인한 저항들. 그런 것들이 뭉쳐져서 내 생각을 시시때때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생각들 중 나는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선택하는 것 밖에 없었다.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 나는 이 순간에도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떻게 생각을 할지 선택할 뿐이다. 내 생각이 다 옳다고 여길 수 없다. 내 생각이 모두 할만한 생각이라고 여길 수도 없다. 나라는 한 소우주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만 통용되는 찰나의 생각일 뿐이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었다. 이제는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내 생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도움 되지 않는 생각이라면 그 생각을 치워버리기도 하고, 내 생각이 나를 가두고 있다면 생각을 두고 거기서 자유롭게 벗어나기도 한다. 필요할 땐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생각을 만들기도 하고, 내가 하는 생각을 반대로 하거나 틀어서 생각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