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연인이며 자유가 된다.
아빠는 육십 대의 나이에서 멈췄다. 우리에겐 영원히 육십 대 할아버지로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육십을 넘어 더 노쇠해지는 그날이 오면 나보다 어린 노인이 되어버릴 테지만 그래도 나의 영원한 아빠다.
육십 대였던 아빠의 유일한 취미는 TV시청이었다. 몸이 아파서 일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프기 전에도 노동이라는 행위는 아빠와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래서 아빠의 삶은 눈을 떠도 딱히 할 일이랄 게 없는 삶이었다. 바깥일이 없다면 집안일이라도 할 텐데 일상을 돌보는 일은 늘 늙은 어머니와 딸들의 몫이었다. 일상을 돌보지 않는 삶이었고, 그것은 곧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과도 같았다.
삼십 대였던 아빠는 늘 혈기왕성했다.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해 술을 즐겨 마셨고 야유회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축구, 당구, 테니스 등 아빠의 일상은 늘 운동과 함께였다. 손에는 책 한 권도 들려 있었다. 그 시대 남자 중 드물게 주말이면 함께 청소를 하는 꼼꼼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삶의 다방면을 열심히 즐기며 살아갔다. 일상을 즐겁게 챙기는 삶은 곧 자신에 대한 애정과도 같았다.
사십 대와 오십 대를 거쳐 육십 대. 모두에게 그렇듯 인생은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풍파들을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삶에서 다가오는 풍파를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일은 개인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 않겠다는 선택도 있겠지만 아빠의 선택은 소멸이었다. 희망도 바람도 없이 마치 정해진 그날이 있는 것 마냥 하루하루 빛을 꺼트리는 삶을 살았다.
마지막 불빛이 꺼지기 직전까지 아빠와 함께 한 건 TV의 불빛이었다. 작은 방 한구석 작은 상자 안에서 나오는 불빛은 자주 같은 장면을 밝히고 있었다. 야구채널, 바둑채널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아빠가 즐겨보았던 프로그램은 휴먼다큐 '나는 자연인이다.'였다. 내 눈에는 매번 똑같은 산골아저씨들 같았다. 그 아저씨가 그 아저씨 같은 자연인들. 산이라는 정해진 장소에서 아무리 잘 살아봤자 뭘 할 수 있다고. 먹고 자고 산타는 것 밖에는 하지 않는 단조로운 일상으로 보였다. 나 같으면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겹다 못해 감옥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자연인도 자연인을 보는 아빠도 그저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매일 똑같은 프로그램을 왜 보고 또 보고 있었을까. (늘 재방송을 보고 계셨다.)
산속에서 살아가는 자연인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만나고 있었던 걸까.
진실은 이미 깊은 땅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짐작뿐이다. 문득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아빠는 가끔 혼잣말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셨다. 그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빠는 자유이고 싶었던 것 같다. 자유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부분만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빠는 일찍 사별을 하고 분명 많은 외로움과 적적함 속에서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몸은 자유임에도 마음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형체 없는 괴로움에 오래도록 갇혀 자유를 잃고 살아간 것 아니었을까. 나아갈 힘은 없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려 이 세월을 한탄하며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매일 밤 자연인과 함께 찬란한 과거에 있거나 곧 닥칠 영혼의 자유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영원히 알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을 막연히 내 뜻으로 짐작해 본다. 내 짐작이 맞겠거니 하며 말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을 지금이라도 공감하고 싶다.
가정을 꾸리게 되면 소정의 자유를 버리고 사랑을 얻게 된다. 내가 선택한 사랑이 분명 행복인 줄은 알지만 잃어버린 자유가 가끔 우리들을 찌른다. 사랑과 함께 찾아온 책임감, 죄책감, 슬픔, 고통이 나를 부자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끔은 인간의 진짜 삶인 다큐멘터리가 오히려 더 픽션 같을 때가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라고 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정말 믿기지 않을 일들이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비현실적인 힘이 우리에겐 없는데도 인간은 어려움을 헤쳐가며 살아간다. 어려움 이후에 극적인 반전이나 해피엔딩만 갖게 되는 건 아니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버텨냈으니 그것 또한 고유한 스토리다.
그 마음 붙일 곳 없었어도 그 마음 자유롭지 못했어도 자연인을 보면서 잠깐이라도 자유였기를 바란다. 마음으로 함께 산을 누비고 강을 건너며 자유롭고 행복하였기를 바란다. 자연인을 넘어 자연의 일부가 된 아빠는 이제 진정 자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