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음식에 대하여
나의 세상. 내 세계에 존재하는 3대 진미가 있다. 그 진미들에는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단순히 ’ 맛‘으로만은 랭킹에 올라갈 수 없다. 스토리가 있고, 마음이 있다.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음식이란 그저 먹어서 열량을 내는 에너지 그 이상. 맛있어서 행복해지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 존재한다.
첫 번째 진미. '꼬막무침'
내가 어릴 적에 엄마는 식 때마다 늘 여러 가지 반찬을 내놓으셨다. 그래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음식 하는 데에 쓰셨다. 어린 맏딸인 나는 엄마 품을 느끼는 시간이면서 놀이시간이기도 한 보조요리사가 되는 시간을 즐겼다. 엄마와 마주 보고 도란도란 콩나물 머리를 따기도 하고, 엄마가 김을 한 장 한 장 구워주시면 거기다가 솔로 참기름을 칠하고 내 취향 껏 소금을 톡톡 뿌리기도 했다. 싱싱한 생미역무침이 나오는 날에는 옆에서 미역귀를 오독오독 씹어먹는 재미로 늘 곁에 서 있었다.
수많은 음식들 중에 인상 깊은 메뉴는 단연 ’ 꼬막’이었다. 동그란 접시 위에 잘 삶아진 꼬막이 뚜껑 없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리고 꼬막 머리 위에는 감칠맛 나는 양념장 왕관이 올려져 있었다. 분명 양념장을 빼면 보잘것 없이 보이는데 양념 하나로 화려한 꼬막으로 변신한다. 맛도 맛이었지만 그 모양새와 정성이 더 맛있었다. 잘 모르지만 다른 밑반찬에 비해서 특별한 메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막무침이 얼마나 대단한 메뉴인지는 결혼 후 주부가 되면서 더 생생히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반찬을 할 수 없었다.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하고 싶어서. 어디 정식집이나 가면 먹을까. 손 많이 가고 세상 귀찮은 그 반찬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반찬이었다.
두 번째 진미. '된장찌개'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중학생 시절부터는 할머니 밥을 먹고 자랐다. 이제 옆에 붙어 소꿉놀이할 엄마도 없었고, 살아 계신다 한들 그럴 나이도 아니었다. 매일 여러 가지 많은 반찬을 해주던 엄마와 달리 할머니는 늘 똑같거나 비슷한 메뉴들을 만드셨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음식의 맛은 할머니의 음식이 훨씬 뛰어났다는 점이다. 가끔 엄마들의 손에는 양념이 저절로 나오나 싶은 그런 손맛이 있다. 할머니는 손맛이 달랐다. 김치도 같은 김치가 아니었고, 찌개도 같은 찌개가 아니었다. 사실 별 재료도 안 들어간다. 정말 최소한의 기본재료만 들어간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맛이 있다.
그 맛깔난 음식들 중에 인상 깊은 메뉴는 단연 ‘된장찌개’였다. 일단 중요한 건 뚝배기다. 절대 된장찌개는 냄비에 끓이는 메뉴가 아니다. 뚝배기라는 용기를 써서 끓여야 한다. 할머니의 된장찌개의 특징이 있다면 육수용으로 들어간 커다란 멸치가 그대로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육수를 낸 후 멸치를 건저 내는데 할머니는 그대로 멸치를 고우듯이 끓이셨다. 국물이 자박자박해야 한다. 내용물이라고 해봐야 양파, 애호박, 파가 전부다. 그런데도 너무 맛있다. 된장찌개 하나만 있으면 밥 두 공기는 거뜬했다. 말아먹는 것도 아닌 것이, 비벼 먹는 것도 아닌 것이, 그 사이 어디쯤의 된장밥. 일품요리 부럽지 않다. 지금도 나는 식당에 가면 김치찌개보다는 늘 된장찌개를 시킨다. 아마 그냥 찌개를 먹는 게 아니라 그때 할머니의 정을 시키는 것일 테다.
세 번째 진미. '회'
초등학교시절까지 부산 광안리에 살았다. 그 동네에 살면서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은 회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바닷가로 내려갔다. 회센터에 가서 회를 떠서 포장한 다음 방파제로 간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고 철썩철썩 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먹는 회는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달다는 감각을 느끼게 했다. 회를 먹는 날은 늘 가족 안에 즐거움이 넘치는 날이었다. 일상 메뉴가 아니었기에 우리의 특별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행복의 음식이었다. 분명 그 시절에도 바닷가에는 맥도널드가 있었다.(친구들 생일파티를 거기서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맛있었다고 기억되는 건 회다. 나는 회를 먹으며 가족 안에서 즐거움을 먹고, 사랑을 먹고, 추억을 먹었다.
부산사람들은 회사랑이 넘친다. 생일상에도 회가 올라간다. 명절 후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늘 다음 날 메뉴는 회다. 찌개와 나물반찬으로 보내는 일상 사이에 끼어든 싱싱한 활어회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때론 무료할 수 있는 일상에 특별함을 더해주었다. 지금도 횟집에 간다고 하면 그냥 좋다. 분명 요즘 세상엔 실제 산해진미가 넘쳐나는데도 나의 회는 다른 음식이 주지 못하는 특별함이 깃들어있다.
나만의 세계의 3대 진미. 이 진미들의 특징은 모두 일상 속의 특별함이고, 평범함 속의 진귀함이다. 음식과 더불어 가족이라는 사랑이 그 안에 있다. 나는 분명 음식을 먹었으나 내가 먹은 것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만드는 그 음식, 가족과 함께 즐겁게 먹는 그 음식. 나는 사랑을 먹고 이만큼 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