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숙원사업

나의 목소리를 위하여

by 밝음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다. 다시 시작할 일상의 문 앞에서 숨을 고르려 의도적으로 멈추어 본다. 나를 위해서 잠깐의 시간적인 틈, 조금의 공간적인 틈을 만든다. 방에 들어가 헤드폰을 꼈다. 쳇 베이커의 음성이 나지막이 들려온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세상에 많지만 그중 가장 빛나는 건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아주 멋진 외모를 가졌어도 목소리가 그렇지 않으면 괜스레 아쉬웠다. 그런데 평범한 외모를 가졌어도 목소리가 멋진 사람들은 보이는 모습까지도 다르게 보였다.


시각보다는 청각으로 더 깊은 감각을 느끼는 나라서 얼굴 예쁜 친구들은 부럽지 않은데 목소리가 예쁜 친구들은 항상 부러웠다. 한 사람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단편적이었다가도 목소리를 통해 무궁무진해졌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한 사람의 극히 일부일 뿐인 것 같다. 그런데 목소리는 모습 너머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의 몸속에서 만들어진 소리, 그 사람의 에너지가 섞인 소리. 그 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와 나의 몸속으로 찾아온다. 내 귀로 들어와 내 몸속에 살게 된다. '목소리를 들었다.'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와 존재의 교류가 소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에게 목소리는 콤플렉스이자 동시에 욕망이다. 어릴 때 낯가림이 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성격의 아이였다. 사랑이 과했던 엄마는 나를 웅변학원으로 보냈다. 분명 내 나이 또래들인데도 단상에 올라가 힘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외쳐대는 연사들을 보고 나는 더욱 함구했다. 더 드러내지 않았고 더 말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더욱 두려웠다. 그리고 스스로 더 큰 생각을 만들어냈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어."

"나는 저런 아이가 아니야."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소리를 내지 않고 살았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편하지도 않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최소한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하지 않아서 본 손해가 천 트럭정도 되겠다.) 틀렸다고 지적받을 일도,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타박받을 일도 없었다. 나의 목소리는 더 많은 순간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숨길수록 더욱 재기능을 못하는 듯했고, 급기야 사람들 앞에 서면 몸이 굳어버려 말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속에서는 궁금한 것들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는 나로 만들었다. 자료 만드는 게 훨씬 고돼도 발표보다는 더 고생하는 역할을 자처하게 했다. 회사에서 정부지원사업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고 자괴감 가득한 밤을 보내게 했고, 결국은 자기소개를 하다가 떨려서 울먹거리는 나까지 만들었다.




마흔이 되었을 때 결심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말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던지 두려움을 뚫고 말을 무탈히 할 수 있는 내가 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최소한 말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싶었다. 그리고 목소리 내기가 힘들다고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올해부터는 말하기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일단 혼자라도 말을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청소할 때도 요리할 때도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듯 말하면서 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금세 까먹고 자발적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말하기가 즐거워야 할 것 같은데 의무감이 되니 실패가 당연했다.


남편은 집에서 혼잣말을 그렇게 해댄다. 화장실 갈 때도 다녀오겠다고 얘기하고, 집안일을 할 때도 이제 뭘 하겠다고 보고를 한다. 생각을 말로 하는 습관이 있었다. 반면에 나는 말로 해야 할 것들도 생각으로 하는 습관이 있었다. 말을 삼키고 속으로 생각한다. 쓸데없는 말들을 하는 게 나에게는 에너지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잣말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적당한 방법을 찾다가 낭독을 해보기로 했다. 책 읽을 때 눈으로만 읽다가 하루에 15분은 낭독하며 읽어보기로 했다. 고역이었다. 일단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발음도 엉망이고 목소리 톤도 별로였다. 혼자만의 다짐으로는 해내기 힘들 것 같아서 챌린지도 신청해서 매일 녹음까지 하면서 낭독했다. 녹음해서 듣는 내 목소리는 더욱 별로였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더군다나 다른 참여자들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와 비교까지 되니 더욱 하기가 싫어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내 목소리와 친해질 수 있을까? 올해의 숙원사업이다. 말하기에 관한 책을 일단 몇 권 사두었다. 스피치 관련 온라인 강의를 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나는 왜, 어쩌다, 나의 목소리를 미워하게 된 것일까.

아무래도 아름다운 목소리, 멋진 목소리를 사랑한 탓인 것 같다. 빛나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모자라고 평범한 내 목소리는 자연스레 나에게 천대를 받게 되었다.


이럴 때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해.' 따위의 이야기는 도움 되지 않는다. 내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내 목소리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뛰어난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내가 듣기에 좋은 내 목소리까지는 되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만족스러운 나를 편안하게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 단 한 번도 걸어볼 기회를 주지 않고서는 왜 나는 잘 걷지 못하냐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면 달리기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싶다면, 편안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목소리 내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어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과 그 마음을 내가 알아채주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나는 나를 위해 많은 시도를 할 것이고 성장하는 나를 보며 함께 기뻐할 것이다. 내 귀를 행복하게 하는 나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나의 목소리 숙원사업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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