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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01. 2024

공식적으로 나빠도 되는 날

만우절 장난

4월 1일 만우절이다. 요즘에도 애들이 만우절 장난을 치는지 궁금해서 5학년인 첫째에게 물었다.



"너희 만우절인데 오늘 무슨 장난쳤어?"


"애들한테 전학생 온다고 거짓말했지."


"아니, 전학생 온다고 거짓말하는 게 만우절 장난이라고? 왜 하필 전학생 온다는 걸로 속이는 거야?"


"전학생 오면 수업 안 하거든. 전학생 소개하고 친해지는 시간 가진다고."



초등학생 때 애들이 쳤던 만우절 거짓말은 "김일성 죽었다."였다. 너무 흔한 거짓말이라서 식상했는데 4학년 여름날 애들이 김일성 죽었다며 난리를 쳤다. 만우절도 아닌데 뻥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문방구에서 김일성 사망 TV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원히 거짓말일 것 같던 말이 진실이 되는 그 순간의 놀람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생 때 가장 많이 했던 장난은 단연 분필가루 잔뜩 묻힌 칠판지우개였다. 선생님이 들어오실 시간에 맞춰 앞문 틈새 위에 끼워둔다. 문 열 때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머리 위에 정타로 맞는 장면은 구경하지 못했다. 보통은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얼굴 앞으로 떨어졌다. 우리가 좀 더 연구를 했어야 하나 싶지만 철없고 순수한 여중생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슬프게도 고등학생 때는 만우절이 사라졌다.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는 공부밖에 모르는 사립학교였다. 만우절 장난 따위를 쳤다가는 혼줄이 날 게 분명했다. 그 누구도 만우절 장난의 자유는 원래 갖지 못한 자들처럼 조용히 아침자습을 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재미없는 여고시절이다. 우리가 주말마다 왜 인근 대학가를 배회하고 다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물속 같은 평일과 숨통 틔이는 잠깐의 자유를 얻는 주말이었다. 주말에 선생님들이 순찰을 돌아다니시는 날도 있어서 그마저도 온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말 잘 듣는 아이, 모범적인 아이가 사랑받는 세상에서, 공식적으로 나쁜 아이가 되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는 날. 인간이 선한 마음만큼 가지고 있는 악한마음이 귀여운 장난으로 승화되며 갇혀있던 마음이 해소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우절 거짓말에 속고, 속았다고 분개하고, 너는 나를 속이고 나는 너를 속이고. 인간이 가진 본능을 죄책감 없이 여기저기 마음껏 사용하며 카타르시스를 맛보던 그때 그 시절이 아득하다. 


지금은 만우절이 있다고 해도 누구를 속이고 싶지도 않으며 누구에게 속는 것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 재미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재미있게 놀던 나도 내 안에 그대로 있으니 괜찮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하나하나 세월을 쌓아가는 기쁨이 이제는 더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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