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얼룩소 활동을 정리하며
글을 정리하고 있다. 나는 [프로젝트 얼룩소]의 사전가입자로 시범서비스 기간부터 대략 8개월 동안(262일) 얼룩소에서 활동해왔다. 그동안 적은 글이 모두 714개, 하루 평균 2.7개의 글을 썼다. 매일 글 쓰는 습관을 들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꾸준히 한지 두 달 쯤 지나자 신기하게도 나는 언제 어디서나 쓰고 있었다.
글쓰기 습관은 들였지만, 예민한 내가 활동하기에 얼룩소는 괜찮은 공간이 아니었다. 초반에 우려한 친목이 편을 가르는 수단이 되면서 활동하는 게 점점 불편해졌다. 수 달 간 쌓여온 오해와 시기, 질투 등이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을 건너면서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룩소의 원래 취지인 착한 공론장이 실제로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름 도움이 돼보고자 많은 애를 썼다. 여러 글을 연재하기도 하고, 치우친 흐름을 보이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얼룩소 측에서도 자꾸 문제를 지적하는 나를 껄끄러워한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됐다. 얼룩소가 결국 정착한 운영방식의 일부가 썩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결국 나는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아예 탈퇴를 할지, 탈퇴는 하지 않고 활동만 그만 둘지에 대해 오래 고민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 중에는 정말 평생 가고 싶은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들은 대단한 끈기와 열정으로 나를 붙들었다. 시스템이 바뀌어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글을 볼 수 없으니 탈퇴만은 하지 말라고 말린 것. 이미 그만 하겠다는 글도 쓴 마당에 탈퇴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 모양이 빠지는 일인 것만 같았다. 마음 속으로 탈퇴를 결론낸 뒤 나는 어제 오늘 계속 글을 정리해갔다.
글을 정리하다보니 8년 같은 8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초반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꽤 영향력 있는 얼룩커가 되었다. 얼룩소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던 시기, 운 좋게도 내 글이 자주 메인에 걸렸고 그 영향으로 팔로워가 급증했다.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슈와 맞물리면서 내가 쓴 글이 얼룩소내 최고 좋아요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목받는 건 감사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활동이나 태도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무리 내 의도가 순수했다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의도는 다르게 읽혔다.
글을 옮기다 가장 반응이 컸던 글들을 다시 보게 됐다. <윤석열 당선인께>와 <가난을 선택한 삶>. 모두 얼룩소 탑에 걸린 적이 있는 글이다. <윤석열 당선인께>는 얼룩소 역대 최고 좋아요수(331개)를 기록했다. 답글도 최고치로 무려 199개가 달렸다. <가난을 선택한 삶>은 좋아요수 178개, 답글은 72개가 붙었다. 평소 반응이 아주 좋은 글의 좋아요수가 50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분명 주목할만한 기록이다. 좋아요수 100개를 넘긴 글이 모두 8개, 좋아요수 50개를 넘은 글은 40개에 육박한다.
어제는 글을 정리하며 내 기록에만 집중을 했다. 오늘 다시 놓친 게 없나 정리를 하다보니 새삼 답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얼룩소 내 활동이 없던 사람들이 남긴 답글이 꽤 많았다. 찬찬히 살펴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짧지만 자신의 속내를 내비친 사람들부터 길게 진심을 담아준 글들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공간에 들어왔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공간을 나갔을까. 누군가는 부러 잊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일상이 바빠 서서히 잊어갔을 것이다.
그 글들을 보다보니 내 글은 퍼갈 수 있어도 그 답글들까지 내가 가져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활동이 거의 없지만 이들이 언젠가 다시 얼룩소에 돌아왔을 때 자신이 남긴 글을 보다 내 원글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탈퇴하면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내 글은 주인이 없는 작자미상의 글이 된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내 글 옆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낳은 글들을, 진심을 다해 쓴 애틋한 내 글들을, 작자미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탈퇴하지 않고 활동만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옳은 길이라고 판단한다.
이제 글 정리가 거의 끝나간다. 이렇게 지난 8개월의 글쓰기 여정을 돌아본다. 얼룩소를 시작하고 나는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누구보다 나를 응원하는 팬들이 생겼다. 글의 완성도가 높아졌고, 그토록 쓰고 싶었던 이야기의 장편 초고를 썼다. 무엇보다 매일 쓰는 습관을 갖게 됐다.
늘 무언가를 완전히 마무리할 때가 되면, 이 순간을 바라볼 먼훗날의 나를 떠올린다. 내게 얼룩소는 어떻게 남을까. 나는 그저 스쳐간 얼룩커로 남게 될까, 그래도 한번씩 언급되는 잊히지 않는 얼룩커로 남게 될까. 늘 무언가를 사랑하면 나는 불같이 타오른다. 그런 내가 가장 오래 잔잔히 사랑하는 게 있다면 아마 글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펼쳐진 하얀 백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그 안을 채워갈 이야기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누구보다 내 글을 사랑한다. 이런 내게 얼룩소는 분명 커다란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플랫폼에서 글을 쓰더라도 이렇게 진한 마음과 소망을 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애정만 있는 게 아니라 애증이기에 마음은 더 깊고 깊다. 이 글을 쓰면서 이제 정말 끝이라는 걸 실감한다. 그렇게 나는 내 자식 같은 글들을 남긴 채 얼룩소를 떠난다. 탈퇴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글 옆에 내 이름을 함께 남겨 다행이라 느낀다. 내 글이 주인 없는 글이 되지 않는 게 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한 시절이 저물어간다. 글과 사람과 토론으로 뜨겁게 타올랐던 한 페이지를 이렇게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