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는 날은 없다. 공개할 수 없는 글을 쓰는 날이 있을뿐. 긴 호흡으로 써야하는 글이라 공개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차마 꺼내보일 수 없는 내용이라 공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요즘은 둘다. 맑고 따뜻한 이야기를 쓰다가도 이렇게 삶을 예찬하기에 나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 피폐해 쓰기를 멈추게 된다. 그런 글을 지금은 쓸 수 없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숙명에 얽매여 찢기고 발버둥치는 이야기가 아닌가. 거짓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직 내 안에서 객관화가 되지 않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쓸 수도 없다. 내가 가장 아프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아픔이 있는 법이니. 글로 징징대는 건 아무래도 내가 아니다. 그러니 공개는 포기하고, 내 저장고에만 글이 쌓인다. 분노와 미움과 허탈의 글들이.
숙명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을 내 손으로 뜯어고치며 살아왔다. 타고난 성격도, 살아야 할 곳도, 사는 방법도. 타고난 대로 사는 게 가장 쉽고 편한 길이라는 걸 안다. 나는 타고난 대로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면 나 역시 내가 부정하는 삶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었다. 내 삶이었기에. 소중한 나의 삶이었기에. 과거도 미래도 믿지 않는 내게는 지금 이 자리의 내가, 내 삶이 중요했기에,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도 숙명적인 게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영역이 있다. 그런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꼼짝없이 상처를 받는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으니까. 사랑하고 싶지 않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랑의 깊이만큼 증오도 깊고 깊으니,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뿐이다. 생각하지 않는 것. 그저 내가 내 손으로 바꿔온 삶에만 집중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다.
내게 글은 치유이고, 숨길이지만, 복수이기도 하다. 내 숙명에 대한 복수. 긴 시간에 걸쳐 내 삶으로 증명하며 복수하는 길도 있지만, 내가 또 선택한 하나의 길은 글이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객관화를 해야만 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가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나의 숙명을 바라보는 것. 객관화하지 않으면 쓸 수 없으니, 객관화하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으니, 지난 십여 년간 나는 끊임없이 내 숙명의 제3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문제는 숙명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객관화가 끝났다 싶다가도 새로운 사건들이 터지면 나는 거기에서부터 다시 객관화를 시작해야 한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다시 내 숙명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것. 그런 지난한 싸움들을 반복하다보면, 내 스스로가 참 독하게 느껴진다. 오래 전부터 내가 살아야 했기에 시작한 일이지만, 이런 힘든 싸움을 반복하는 내 자신이 인간답지 않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 박완서 작가는 <엄마의 말뚝>이라는 작품으로 상을 받으면서 나와 비슷한 속내를 드러내 보인다.
제가 이번 수상작을 쓰고 나서 자신에게 정떨어지고 수치감마저 느꼈던 것도 자신의 어머니의 현재 진행 중인 참담한 고통을 거리로 삼았대서가 아닙니다. 차마 그걸 거리로 삼아 소설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어머니의 현재 진행 중인 고통과 고투에 대해 여유를 둘 수 있었고, 객관적일 수 있었고, 냉담할 수 있었다는, 좋게 말하면 작가적 근성, 나쁘게 말하면 말 못할 독종에 대한 혐오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이중성은 이 작품에서 너무도 허술했습니다.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감출 수가 없었고 그것이 도리어 저에겐 한 가닥의 위안이 되었댔습니다. <제5회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1981년 박완서>
나는 박완서 작가의 이 문장들을 단어 하나하나 수차례 반복해 읽었다. 내가 오랜 시간 싸워온 것이 온통 저 문장들에 담겨 있었으므로. 독종같은 스스로를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곳곳에서 흔들린 흔적들로 그래도 인간적인 자신의 모습에 작게나마 안도하는 작가의 가감없는 고백. 내가 박완서 작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이 특유의 솔직함 때문이다. 소설이건 에세이건 곳곳에서 작가는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내 글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글을 쓰고 있나.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찬 글들은 결국 공개하지 못하고, 공개할 수 있는 글들을 적는다. 아직은 빙빙 이야기를 돌릴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써내려간다. 지금의 내가, 지금까지 힘들게 정리한 부분까지만, 어떻게든 적어낸다. 내 글은 내가 살아가는 흔적이니, 이 처연한 발자국도, 이 혼란한 발자국도, 모조리 남기려는 독하디 독한 손길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안도해야 할까, 참담해야 할까.
나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을까. 책을 낸다면 작가가 되는 것이고, 이러다 말면 독종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다 결국 괴물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나는 어디로 향해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