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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l 20. 2022

닮고 싶었던 아이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이미지’입니다.




그 아이와 짝이 된 건 고3 때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는데, 짝이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계속 같은 반이었지만 우리는 제대로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 아이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다. 내 눈에 그 아이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한 나는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 틈에 껴서 주로 놀았다. 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그들이 선호하는 음악을 듣고,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의 놀이를 했다. 나만의 취향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짝이 되고보니 그 아이는 또래와 좀 달랐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다. 보이는 부분에 대한 관심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관심은 많은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왕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모든 걸 품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작 열아홉에 사람 너머의 사연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아이였다. 저 아이의 머릿 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저렇게 의연하게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어떤 폭풍이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 아이는 늘 책을 읽었다. 교과서 사이에도 책을 끼우고 틈틈히 읽던 아이였다. 그런 사람을 처음 본 나는 너무 신기해서 물었다. 넌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어. 잠시 뜸을 들이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여섯 살 때였나.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가면 동생이랑 자주 가던 붕어빵집이 있었어. 집 근처였는데 그 주인 아저씨가 나를 참 예뻐했거든. 가면 붕어빵도 하나씩 얻어먹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저씨를 보러 갔어. 그런데 문이 닫혀 있는 거야. 아저씨 집을 알고 있었어. 가게 맞은 편 건물 꼭대기층이었어. 나는 그 건물로 들어가서 계단을 올랐지. 꼭대기층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저씨의 두 발이 보였어. 공중에 떠 있는 발. 어른들은 아저씨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최초 발견자가 어린 나였다는데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 엄마도 마찬가지였지. 그 일이 있고나서 엄마는 일하러 갈 때 집 문을 밖에서 잠그고 나갔어. 엄마가 올 때까지 나는 집 안에만 있어야 했지. 할 게 없으니까 집에 나뒹구는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그 아이는 무척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치 제3자가 겪은 일이라는 듯. 예상 밖의 묵직한 답변에 당황한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걸 물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그 아이는 괜찮다고 답했다.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고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도 남들에게 처음 꺼내본다며 내심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저씨의 죽음도 충격이 컸을텐데, 그 후 집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던 꼬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더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 아이를 따라 책을 읽었다. 고3이지만 대학 진학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흥미를 느껴서이기도 했고, 그 친구를 닮고 싶기도 했다. 그 친구는 겨우 열아홉인데도 자아가 완성돼 보였다. 따돌림받는 아이에게도 스스럼없이 잘 해주었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개의치 않는 사람도 세상에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친구는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낸 걸까.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깊은 생각들을 했을까.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목격했기에 그 모든 것들로부터 초월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시절 나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신도시로 전학을 온 지 삼 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 이마에 주홍글씨가 박힌 것만 같았다. 구도심에 살던 아이라는, 촌스럽고 못 사는 아이라는 주홍글씨. 그 글씨를 지워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신경이 온통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잘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외면을 치장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척 단단한 척 했지만, 내면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 친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닮고 싶었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친구가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의연함을 갖고 있었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막연히 오래 전 사연과 책의 힘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 친구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락이 끊긴 뒤에도 나는 종종 그 친구를 떠올렸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괴로울 때마다, 알을 깨고 싶지만 깨지 못해 고통스러울 때마다 나는 그 아이를 생각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겨우, 그 친구와 조금 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향한 반복된 질문과 부단한 내려놓기를 통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향한 질문과 내려놓기는 진행 중이다. 아마 평생 지속될 나와의 싸움이 아닐까. 그 친구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어떤 모습의 어른으로 늙어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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