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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Jul 30. 2022

궂은 날에도 카페 문을 여는 건,

태풍이 다가오는 날 카페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비설거지 : 비가 오거나 오려고 할 때, 비를 맞혀서는 안 될 물건을 거두어들이거나 덮는 일.


큰 비바람이 예고된 날에는 어김없이 비설거지를 한다. 섬에 내려와 주택에 살면서 들인 습관이다. 습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사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비설거지는 의무와 같다. 게다가 예고된 비바람이 태풍이라면 더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아파트 세상이 커갈수록 비설거지라는 말이 사라질 것만 같아 나는 나라도 이 단어의 생명을 더 이어가겠다는 심정으로 더 자주 사용하려 애를 쓴다. 그러다보니 비설거지라는 말을 애정하게 됐다. 실제 행위는

좀 고되지만.


토요일 아침부터 제주는 태풍 송다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어제 저녁에는 분주히 손을 놀렸다. 날아갈 것들은 안으로 들이거나 단단히 고정해두고 넘어질 수 있는 것들은 눕혀놓고 아이들 풀장도 잘 말려 곱게 접어두었다. 이틀쯤 쓰레기를 버릴 수 없으니 집과 카페의 온갖 쓰레기를 모두 꺼내 갖다 버렸다. 집 뒤편을 슬금슬금 점령하기 시작한 덩쿨식물의 줄기를 손 닿는만큼 제거하기도 하고. 바쁘게 손과 발을 놀리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마침내 다가온 비와 바람을 맞이한다. 이번 송다는 온 몸에 긴장을 해야할 만큼 센 태풍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예고치 않은 피해는 늘 있는 게 섬에서 맞이하는 태풍이란 녀석의 실체이니. 섬 생활 9년차인 나는 마치 노련한 섬지기처럼 군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사실 태풍 시즌만 되면 올해는 또 어떤 무시무시한 태풍이 섬을 초토화시키지는 않을까 긴장을 한다. 특히 지난해처럼 별 다른 태풍 없이 조용히 한 해를 넘기고 나면 다음해가 슬슬 걱정이 된다. 해를 넘어 꼭 한번은 센 태풍이 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기에.


태풍이 몰고오는 비와 바람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비 바람과 좀 다르다. 비정형의 세계라고나 할까. 얇기도 굵기도 한 일정하지 않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바람 역시 뺨을 휘갈기듯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나부낀다. 그런 비와 바람이 시작되면 드디어 태풍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무신론자인 나는 그런 순간이 오면 갑자기 돌변해 온갖 신을 끄집어낸 뒤 기도한다. 이번에도 무탈하게 해주세요.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주세요. 불현듯 종교의 존재 의미를 깨닫는다.


날씨가 궂은 날에 섬의 카페는 손님들의 대피소가 된다. 갈 곳 없어 발이 묶인 손님들은 카페를 찾은 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아이를 낳기도 전 거센 태풍이 다가오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카페는 유독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때는 섬에 지금처럼 카페가 많은 시절도 아니었다. 숙소에 머물 수 없는 손님들은 죄다 카페에 몰린 것처럼 한 자리가 비면 귀신같이 또다른 손님이 자리를 차지했다. 카페를 나서는 순간 온 몸으로 무섭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아야 하다보니 자리에 앉은 손님들은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카페 내부는 손님으로 종일 만석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한 손님이 들어왔고 갑자기 그 순간 기적처럼 앉아있던 손님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와 일부러 일어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그 손님은 말했다. 저도 양보받은 자리에 앉았는데요, 괜찮아요. 그렇게 그 손님은 유유히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그 손님을 나는 아주 오래 떠올렸다. 지금도 어김없이 태풍이 부는 날 카페 문을 열면 그때 그 손님이 떠오른다. 그날 그 손님은 어디로 갔을까.


6년 전쯤 섬에 너무 많은 눈이 내려 공항도 주변 모든 상가들도 정지된 날이 있었다. 그날에도 카페 문을 열어야 하나 고민을 했다. 문을 열더라도 이 눈을 뚫고 올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날 딱 한 테이블을 받았다. 두 남자분이었는데 거북이처럼 느릿한 속도로 차를 끌고 카페에 왔다. 카페가 문을 연 지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살림집이 붙어있는 카페는 문을 열 수도 있을 것 같아 와봤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그 손님들은 꽤 긴 시간 카페에 머물며 언 몸을 녹이고 갔다. 단 한 테이블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쉬어갈 공간을 제공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따뜻해진 날이었다.


태풍이 오거나 심하게 바람이 불거나 폭설이 내린  카페 문을 여는  일종의 구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없는 발이 묶인 여행객들의 대피소 혹은 쉼터 역할로서의 카페를 생각하게 되는 . 여행지에서 카페를 한다는  때로 이렇게 공공의 목적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날이 궂어도 주섬주섬 문을  수밖에. 애써 걸음한 사람이 행여나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입맛을 다실까그렇게 나는 오늘도  작은 카페에 아무도 부여한  없는 사명감을 잔뜩 불어넣은  문을 연다. 누구든 몸도 마음도 편히 내려놓는 시간이기를. 비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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