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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ug 08. 2022

어느 일요일의 기록

자영업자 부모로 산다는 것

아이들과 종일 함께 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딱 하루, 일요일이다. 카페 영업을 주 5일만 하는 건 늘 이상향이지만 여전히 손에 닿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날만은 다르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젯밤 둘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토요일과 일요일만 있게 할 거라고 했다. 주말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간절한 것.


지난 3주 동안은 일요일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흔한 외식조차. 한창 휴가철인 여름인데도 그랬다. 코로나 때문에 두 번의 일요일은 집에 머물러야 했고, 한 번의 일요일은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으로 역시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작은 태풍이라 어떻게든 나가볼까 했지만 태풍은 태풍이었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문 밖을 나서는 건 무리였다.


3주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느덧 8월 한복판이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섬에 살면서 올 여름 들어 바다 한번 가지 못한 터였다. 마당 풀장에 자주 물이라도 받아주면 좋으련만, 남편이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고 혼자 카페를 지키다보니 땡볕에 홀로 고군분투하며 풀장에 바람을 넣고 물을 채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손목도 상태가 최악이라 카페 일과 밥상 차리는 일만 간신히 하고 나머지 일은 거의 포기한 채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뜨거운 여름은 길지만 물놀이 할 수 있는 여름은 짧다. 조금만 공기가 서늘해져도 쉽지 않은 게 물에 몸을 담그는 일. 맞벌이를 너무 쉽게 생각했을까. 생각은 많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고 괜히 남편에게 짜증만 부렸다. 당신이 물을 싫어해 애들 물놀이도 시켜주지 못한다며. 실제 남편이 바다에 가자는 말을 절대 안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갑자기 잔소리를 듣기에는 좀 억울했을 듯하다.


그렇게 코로나도 아니고 태풍도 오지 않는 일요일이 되었지만 남편과 내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전날 마당 공사가 있어 카페 문을 닫고 둘이 평소 안 하던 막노동을 한 탓이었다. 타이레놀을 먹고 잤지만 아침이 되어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한 강도의 노동을 한데다 일요일 아침 일찍 몸을 일으켜 홀로 일을 마무리 짓기까지 했다. 아이들에게 바다에 가자는 말을 던져놓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바다는 오후 늦게 가자고 말을 해놓고 대충 아침을 먹고 집에서 뒹굴거렸다. 방학이 되고 아이들이 게임하고 동영상 보는 시간이 늘었지만 동시에 책을 읽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이들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각자의 책을 읽고 나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행복해하는 각자의 책을 읽는 순간. 입추라서였을까, 어느 때보다도 술술 읽히는 글자들. 오랜만에 말끔히  권을 읽어내고는 무척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은 아이들이 원하는 전복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집 근처 식당이지만 여행객에게는 맛집이었는지 대기가 길었다. 우리는 나란히 대기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있던 손님이 바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돌고래야. 우리 가족은 열심히 바다를 응시했다. 두세 마리의 돌고래가 한번씩 수면 위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냈다. 우리 자리가 나서 앉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모두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돌고래가 조금더 높이 올라와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수차례 헤엄치는 돌고래를 구경하고 아이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우리는 늦은 오후 바다로 향했다. 태양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는 시간에 바다에 가는 건 꽤 편리한 일이다.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르지 않아도 크게 피부가 타지 않고,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만 먹으면 아이들은 금세 단잠에 빠져든다. 체력이 달리는 부모는 그렇게 늦은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바다로 향했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바다지만 제법 사람이 많았다. 첫째는 물을 보자마자 구명조끼를 입고 첨벙 뛰어들었고 둘째는 조심조심 발을 담그며 천천히 물로 들어갔다. 물에 뜨는데 관심이 많은 첫째는 구명조끼에 기대 물에 드러눕기도 하고 헤엄을 쳐보기도 하며 연신 즐거워했다. 물을 조금 무서워하는 둘째는 튜브를 타고 동동 떠있는 걸 즐겨했다. 자주 바다에 못와서 미안해. 내 말에 아이들은 괜찮다며 여름이 끝나기 전에 몇 번 더 오자는 말을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수영을 하니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고 몸은 조금씩 추워졌다. 밀물때라 발끝으로 조금씩 찬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주에 다시 오기로 약속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쿠키를 한아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샤워를 하고 바다에 가져간 물건들을 씻어 정리하고 간단히 밥을 먹었다. 워낙 지친 몸을 끌고 갔던지라 그 시간쯤에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짐작보다 몸은 훨씬 가벼웠다.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예상대로 눕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멀쩡한 나는 다시 책을 꺼내들었다.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이기 때문일까, 낮에 아이들과 만난 돌고래 때문일까, 소원하던 바다에 갔기 때문일까, 한동안 잘 넘기지 못했던 책이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자기 전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읽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보니 오늘 글을 쓰지 않았구나. 그렇게 일기 같은 글을 적어내려간다. 이제 잠을 청할 시간.


아이들은 꿈에서도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둘째는 혹시 꿈에 큰 고래나 상어가 나와 자기를 잡아먹을까 걱정된다고 했고. 나는 고래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고 했고. 남편은 그런 꿈을 진짜 꾼다면 좋은 일이 있을 징조라 했고. 내 옆에 곤히 잠든 아이들은 지금쯤 바다에 도착했을까. 꿈에서라도 오래오래 마음껏 헤엄쳤으면. 다음주에도 다함께 바다에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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