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을 엮고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독립출판으로라도 책을 내려면 스스로 기획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그동안 쓴 글들을 들여다봐도 어떻게 묶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다 그저 생활 속 이야기와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소소하게 적은 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거나 글 목록을 보면 제목이나 목차가 떠오르곤 하는데 내 이야기는 왜 그렇지 않은 걸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다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알림이 떴다. 한번도 도전해본 적 없는 이벤트였다. 독립출판을 생각해온 사람이라면, 언젠가 자신의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프로젝트. 이제 나도 브런치를 좀 열심히 하게 됐으니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되든 안 되든 내볼 수는 있는 거니까. 결심을 해도 이를 실천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머리와 몸이 일치되는 순간이 되어야 비로소 시작을 할 수 있는 것.
여름 휴가철도 끝나고 카페도 좀 한가해져 슬슬 브런치북 만들기를 시작했다. 만드는 방법부터 숙지하고, 제목은 일단 아무렇게나 [~ 순간들]이라고 적어두고 목차를 정리해갔다. 글에 대한 글이 많아 우선 그것부터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동안 쓴 글들 중에 양질인 것을 모아보았다. 순서를 시점과 이야기 흐름에 맞게 정리하다보니 의외로 내 글이 한 줄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생각만 하다가 행동으로 옮기면 그제야 풀리는 일들이 있다. 글도 그렇다. 머릿속에 생각만 잔뜩일 때는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다가도 손가락을 움직여 쓰기 시작하면 비로소 정리가 시작된다. 책을 만드는 일은 머리로 해야하는 줄로만 알았다. 막상 해보니 이제야 그것 역시 행동이 뒤따라야 진짜 시작과 끝을 낼 수 있다는 걸 배운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책을 묶어 보았다.
너무 심심했던 [~ 순간들]이란 제목을 지우고, 글 중에 지금의 내 삶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가난을 선택한 삶]을 제목으로 붙였다. 글도 지금 시점에 맞게, 글과 글이 연결될 수 있도록 퇴고했다. 해야할 일은 바로 해치워야 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며칠만에 수정작업을 모두 마치고 책을 발행했다. 그리고 어제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를 마쳤다.
응모보다 나를 더 가슴 뛰게 한 건 책다운 묶음을 내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일 년 가까이 누적해온 글들은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흔적과 궤적들이 일정한 결을 이루며 숨어있었다. 보이지 않던 부분이 행동으로 인해 서서히 드러나는 걸 보면서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 매일 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 것만 같았다.
십 년 전 함께 소설반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했던 한 언니가 있다. 내가 섬으로 내려와 정착에 힘쓰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 언니는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열심히 쓴 언니는 결국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지인들이 언니의 책을 언급하면 나는 너무나 반갑게 아는 언니라고 말을 더하곤 한다. 함께 쓰던 언니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게 내 일처럼 기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런 언니에게 심심할 때 보라며 브런치북 링크를 보냈다. 언니는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내 글을 읽어주었다. 내게 다시 글로 돌아와서 정말 기쁘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예전에 소설반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을 전해주었다. "작가는 쓰고싶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안 쓰면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작가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왈칵 눈물이 났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책을 내고 정식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그랬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쓰는 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으며 고군분투했던 지난 날들과 지치지도 않고 밀려오는 삶의 파고들 속에서 울고 웃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니의 말은 내게 보상과 같았다. 그렇게 살아내서 결국 쓰고 있는 지금에 대한 보상.
나는 늘 인내가 부족해 끝까지 가지 못했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방향을 트는 게 나의 특기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스스로와 약속한 건 단 하나였다. 무조건 끝까지 쓴다. 되든 되지 않든 쓰고 또 쓰고야 말겠다. 그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이자 내가 살아온 삶의 의미를 증명하는 행위라고 믿었다. 나는 여전히 쓸 게 있음에 감사하고, 쓸 수 있음에 행복하다. 글을 쓸 때마다 가슴이 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보일까 하는 마음에.
응모를 마쳤으니 이제 다시 새 글을 쓰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가을이니 읽고 생각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또 내 글들을 쌓아가야지. 삶의 고비가 유독 많았던 건 타고난 숙명 탓도 있지만, 예민하고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몸을 움직이지 않는 나의 타고난 성정 때문이었다. 편견과 틀이 많은 세상을 만나 나는 늘 외롭고 물음표 가득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지만, 눈치 채지 못했을 때는 살아가는 일이 너무 버겁기만 했다.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 모든 방황의 날들을 감싸 안을 수 있다. 모든 게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살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살아내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살아간다는 건 분명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꿈같은 순간을 어느 날 문득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나는 내 삶을 마침내 한데 묶었다. [가난을 선택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