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얼룩소가 오픈한 지 일 년이 되었다. “매일 쓰면 반드시 무슨 일인가는 벌어진다”는 천관율 에디터의 말에 이끌려 가입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소 잘 가지도 않는 페이스북에서 팔로우한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천 에디터의 글을 그날 읽은 게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그 글을 읽은 건 얼룩소 오픈 하루 전날인 2021년 9월 29일이었다.
얼룩소는 9월 30일 시범 서비스를 오픈했다. 하루 정도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글을 올리는지, 어떻게 활동하는지 지켜보다가 다음날인 10월 1일부터 글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일상에 치여 매일 글을 쓰지는 못할 때여서 매일 쓰는 습관 하나를 들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절박했기 때문이었을까, 얼룩소에 애정이 생겨서였을까. 어느덧 나이를 제법 먹었고 더는 글쓰기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떻게든 글이 쓰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다시 쓰기 시작했다. 초창기 얼룩소에 쓴 글들은 방황하고 있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자주 길을 잃었다.
그런데도 얼룩소를 놓지 않았던 건 나와 생각이 비슷한 다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진짜가 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 현안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 반가웠던 것 같다. 매일 일과 육아에 치이며 산 지 오래였다. 혼자 속으로 하던 사회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렇게 반가웠다. 그 힘으로 글을 계속 썼다. 부끄러운 글도 있었고, 지금 봐도 괜찮아 뵈는 글도 있다.
익숙해지고 나서는 에세이도 많이 써서 올렸다. 그 글들은 한동안 방치해두었던 브런치에도 같이 올려두었다. 이력을 쌓아가듯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나만의 글을 계속 썼다. 돌이켜보면 글에 대한 절실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참으로 절실했다. 어떻게든 글 쓰는 삶을 살고자,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하고자 몸부림을 쳐댔다. 내게 남은 마지막 길이자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보겠다는 생각으로. 마감일도 없는데, 기다리는 이도 없는데, 그렇게 글을 썼다.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그 일 년은 잊지 못할 순간들로 채워졌다. 부끄럽지만 팬이 생겼고 몇 개 플랫폼 탑에 글이 실렸다. 브런치북을 하나 엮었고 수많은 에세이와 현안글, 그리고 장편소설 하나와 단편소설 몇 개를 썼다. 새 플랫폼에서 작가로 일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내 글로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깊은 공감을 전해줄 수도 있다는 걸 처절히 깨달았다.
이 모든 건 매일 일 년을 썼기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여전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나는 결국 쓸 수 없다고 한탄만 했다면 그 무엇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습관을 들인다는 건 삶을 변화시키는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서야.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한번도 최선을 다한 적이 없었다. 삶의 순간순간 진심이었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해낸다는 건 내게는 참 어렵고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 시간 인내심이 없는 스스로만 나무랐던 것 같다.
매일 쓰기 시작하면서 다짐한 단 하나,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쓰기. 여전히 내가 두드리는대로 글자가 완성되고, 내가 만들어낸 문장들이 나열돼 하나의 글이 되는 과정이 나는 참 행복하다. 내 글 뿐만 아니라 잘 정리된 타인의 글을 볼 때도 나는 속으로 외친다. 아름답다. 글로 무언가를 전하려는 그 간절함이 보일 때마다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르고, 절실함 하나를 동력으로 여기까지 걸어온 나는 앞으로 걸어갈 날들로 가슴이 벅차다.
잘 하는 일을 해야하는지, 좋아하는 일을 해야하는지 누군가 내게 질문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아무리 잘 하는 일도 애정이 없으면 생명력을 갖기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취 여부를 떠나 유지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결국 잘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버스킹 프로그램인 <비긴어게인>에서 가수 이소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는 음악이 전부인데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고. 그때는 그저 멋진 마인드를 가진 뮤지션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요즘 이 말을 자주 되뇐다. 그리고 하얀 종이 앞에서 내면화한 그 말을 머릿속으로 재생하곤 한다. 내게는 글이 전부인데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고. 그러니 글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나는 몰입할 수밖에 없다. 나는 차마 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수 없기에.
이 글을 쓰면서 혹여 내가 말하는 일 년이 자랑으로만 비춰질까봐 공개가 꺼려졌다. 그럼에도 이 글을 결국 완성하고 공개하는 건, 어딘가에서 망설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내 진심이 가닿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아무 것도 없던 나도 여기까지 왔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최선을 다한 일이 아직 없다면, 죽기 전에 한번은 후회없을 때까지 자신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그게 무엇이든,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더라도,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얼만큼의 노력을 쏟았는지 낱낱이 알고 있다. 남은 속일 수 있어도 내 자신은 도저히 속일 수가 없는 것. 내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쓴다. 무엇이 되든 되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는 쓴다. 그리고 나의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또다른 일 년 후의 나를 만들 것이라 믿는다. 시간과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오늘도 이렇게 글 하나를 써낸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