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뜻을 알아갈수록 세상을 알게 된다
요즘 글을 쓰면서 내가 가장 고민하는 건 '정확성'이다. 가슴에는 하고 싶은 말이 차있지만, 막상 하얀 종이 위에 털어놓으면 '그 말이 그 말' 같을 때가 있다. 내가 내뱉는 언어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면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한다. 글태기라고 불리는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슬럼프를 겪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그럼에도 좀 더 유연하게 고개를 넘어가고 싶다.
이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은 사전을 자꾸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말이 그 말'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들 중에 가장 적확한 단어들을 골라 문장 안에 넣으려 한다. 수시로 사전을 찾아보고, 유의어들을 들여다본다. 비슷한 단어들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같은 감정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듯, 단어도 비슷한 뜻을 갖고 있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로 표현의 맛이 달라진다. 그중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꼭 들어맞는 낱말을 찾으려 눈을 크게 뜬다.
글을 쓰고 또 쓰다 보면, 언어가 가진 한계가 명확하게 보인다. 내 마음과 완전히 백 퍼센트 일치하는 단어를 못 찾을 때도 많다. 언어는 약속이기에 내가 홀로 창조할 수는 없으니, 아쉽지만 현존하는 단어들 중에 그나마 가장 유사한 단어를 고르고 골라 문장 안에 넣는다. 다 쓰고 나면 써놓은 글을 반복해 읽으면서 맥락이 너무 갑작스럽지는 않은지, 적확한 단어를 사용했는지 다시 점검한다.(누가 보면 상당히 철저한 작가구나 하겠지만, 실은 그냥 매일 쓰는 사람일 뿐.)
'욕심'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 나온다. 유의어에는 욕망, 탐욕, 과욕, 야욕 등이 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의미가 다르다.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으로 욕심에 비해 분수와 같은 한계가 없고, 개인적이며 순수하다. 반면 탐욕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이라는 뜻으로, 욕심보다 과한 상태를 이른다. 단어의 뜻을 명확히 알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게 욕망인지, 욕심인지, 탐욕인지가 가려진다.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의미도 알게 되는 것.
최근에는 모임의 글쓰기 소재가 '휴식'이라 휴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휴식은 그저 쉼이라고 적혀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휴식'의 정의 안에는 반의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들어가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이게 바로 휴식의 정의다. 나는 이 문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엿본다. 일상의 소중함을 감지한다. 결국 쉰다는 건, 다시 일상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잘 일하기 위해서라는 것. 휴식의 의미는 휴식을 넘어 일의 의미까지 일으켜 세운다.
휴식을 삶에 대입한다. 삶의 정의는 '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이다. '목숨' 또는 '생명'이라는 뜻도 지닌다. 삶의 뜻에는 반의어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삶이 있는 것들을 우리는 '생물'이라 부른다. 무생물에게 삶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죽음이 없다면 삶도 없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말은 '죽어간다'는 말과 동의어이자 반의어다. 살아간다는 말도 울림이 있지만, 죽어간다고 바꿔 쓰면 그 울림은 배가 된다. 의미가 머리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가슴을 파고든다. 똑같이 살아가지만 결국 죽는다는 걸 상기하게 되면서, 일 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더 소중한 것들에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단어의 의미를 더 명확히 알고 싶어서 사전을 들여다봤을 뿐인데, 들여다볼수록 세상이 드러난다. 삶의 의미가 드러난다. 모든 단어는 의미를 지닌다. 의미가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단어가 된다. 인간이 태어난 것에는 의미가 없고, 의미를 찾아가고 부여하는 건 인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단어의 의미를 좇아가다 보니 '의미는 거의 모든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그 의미로 살듯, 단어도 결국 의미를 지니고 의미를 통해 빛난다. '거의'라는 부사를 붙인 건, 의미로만 존재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의미 없는 수많은 죽음들을 알기에.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세상을 알아가는 건, 말의 뜻을 더 명료하게 인식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책을 읽다가 내게 묻는다. 엄마 이게 뜻이 뭐야. 아이들은 자신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 단어를 배우고, 어른이 된 나는 세상을 더 깊이 있게 느끼기 위해 사전을 뒤진다. 인간이 약속한 언어의 의미를 알고, 내 마음을 더 명료하게 하고, 더 정확하게 타인에게 전달하려 한다. 타인이 뱉은 말과 글도 더 확실한 뜻을 알고 내 안에 들이려 한다. 인간이 살면서 말과 글을 쉼 없이 내뱉는 건, 결국 정확한 표현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함이 아닐까.
사전을 열었을 뿐인데, 세상이 나온다. 세상을 담고 있는 게 사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사전의 의미는 뭘까.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따위를 해설한 책.’ 적확한 느낌은 있지만, 어딘가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전을 가장 설명하지 못하는 게 사전이라니. 아쉬운 마음에 내 마음대로 의미를 덧붙여본다. 사전이란, ‘세상을 담은 책’. 오늘도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 사전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