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노트를 선물 받았다. 올해 가장 크게 결심해 실천한 일 중 하나가 학교에서 '책 읽어주는 선생님'에 합류한 것인데, 거기에서 단체로 선물을 받은 것이다. 노트를 선물 받는 건 정말 기쁘지만, 활용을 잘할 줄 모르는 내게는 짐이 되기도 한다. 테이블 한 켠에 한동안 놓아둔 노트를 다시 꺼낸 건, 신형철 평론가의 신작인 <인생의 역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들을 만나면, 나는 자주 멈춰 선다. 책이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자주 상념에 잠긴다. 나를 멈추게 한 문장들을 손으로 적어보고 싶어 잠들어 있던 필사 노트를 꺼냈다.
필사 노트 첫 장에 적힌 질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이라... 그러고 보니 <인생의 역사>에 끼워진 엽서에도 신형철 평론가의 친필로 문장에 대한 글이 적혀 있다.
두 글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앞으로 만날 문장에 대한 기대와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가 기다려온 문장이 되는 순간들을 떠올린 것이다. 만난 적 없는 누군가와 문장으로 소통하는 건 얼마나 짜릿하고 감사한 일인가.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소통 안에 누군가 기다려온 문장까지 들어있다면, 그 순간은 퍽 감동이지 않을까. 모든 문장을 밑줄 치고 싶을 만큼 깊은 글을 쓰는 이가 "저는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수줍게 소망을 고백하는 모습을 엿보면서,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런 순간을 꿈꾸고 있다’고 홀로 작게 읊조렸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 심해보다도 더 깊은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은 내 안에 늘 자리한다. 시 같은 산문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누군가가 원하던 문장을 내가 써주고 싶다는 마음을 기본적인 욕구처럼 지니고 살아간다.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뜬구름 같은 대화가 아니라, 서로가 원하던 대화로 곧장 향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려 한다. 예를 들면 “잘 지내지?”가 아니라 “어떻게 지내?”처럼 상대가 더 입을 열 수 있는 질문을 찾는 것.
명문이라는 말이 있다. 명문은 보통 이름 명(名)을 써서, 이름날 정도로 뛰어나게 잘 지은 글을 말한다. 또 다른 명문도 있다. 여기에는 밝을 명(明)이 들어가, 사리가 명백하고 뜻이 분명한 글을 뜻한다. 한때 나는 명문이 화려한 수식어와 다채로운 표현으로 가득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진짜를 담은, 뼈가 있는 글이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한 독서모임에서 타인이 나와는 너무나 다른 문장에 짙게 밑줄을 쳐놓은 걸 수차례 발견했다. 살아온 삶과 처한 위치가 다르기에 무엇이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의 문장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명문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순한 문장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어디인가’라는 문장도 명문이 될 수 있다. 그 문장이 읽는 누군가가 그토록 직면하길 두려워 했던 명제라면 더욱 그렇다. 한 친구는 누군가가 “힘들지 않니?”라고 슬쩍 건넨 말 한 마디에 무너져 몸 구석구석이 아프고,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 순간 ‘힘들지 않니’라는 다섯 글자의 말이 뼈가 되었으리라. 그러니 글을 쓰는 이도, 말을 뱉는 이도, 무엇이 상대가 찾던 문장이 될지는 모른다. 삶에 그런 순간들이 드문드문이라도 존재한다는 건, 작은 기적이 아닐까. 어쩌면 그 기적을 더 자주 만나고 싶어 책을 그리고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두는지도 모르겠다.
늘 좋은 글만 쓰는 꿈을 꾸지는 않는다. 쓰는 누구라도 매번 자랑하고 싶을 만한 좋은 글을 짓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내가 적은 문장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내 글을 읽을 독자가 그토록 기다려왔지만, 스스로도 차마 몰랐던 그 문장이라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나 역시 타인의 글이나 말 속에서 그런 문장을 발견한다면, 이런 순간이 있어 그래도 인생이 살 만하다고 삶을 예찬할 수 있지 않을까.
명문을 쓰고자 하는 욕심은 내려놓고, 다만 명문으로 가는 길에 대한 욕망은 내 안에 채우고, 오늘도 글을 쓴다. 명문을 위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삶을 깊게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뼈가 있는 문장이 발자국처럼 남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운 좋게 내 손으로 누군가가 기다려온 문장을 쓰게 되는 날이 올지도. 그러니 오늘도 나는 내 발자국을 하얀 종이 위에 꾹꾹 눌러 담는다. 언젠가 만날 경이로운 순간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