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뽑고 나니 한아름이다. 양면 인쇄가 잘 되지 않아 단면 인쇄를 해서 그런 모양이다. 일 년 전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써 내려간 글인데, 이제야 인쇄를 했다. 작은 노트북 화면만으로는 도저히 퇴고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십만 자가 넘는 긴 소설이다. 쓰고 나서 몇 주 뒤쯤 퇴고하겠다고 열어봤다가 화들짝 놀랐다. 미친 듯이 쓴 줄 알았는데, 미쳐버리게 쓴 것이다. 이게 소설일까. 일기일까. 에세이일까. 경계는 흐릿하고 상황만 나열되어 있었다. 도무지 고칠 엄두가 나지 않아 조금 손을 보다 덮어두었던 글을 다시 꺼낸 것이다.
왜 꺼냈느냐고.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한때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절실해서 쓰기 시작한 장편이었다. 쓰고 나서 몇 달을 앓았고, 그 뒤에야 죽을 것 같은 느낌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면 된 거지. 이 글을 통해 그 시절의 나를 내가 이해했으면 된 거지. 내가 무슨 소설이야. 그렇게 덮어둔 지 수개월. 주로 에세이를 쓰지만 종종 소설이 쓰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흘끔거리게 됐다. 내가 그러니까 써놓은 게 있긴 한데, 이걸 어찌해야 좋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신도시에 관한 글이었고, 아파트 브랜드명으로 친구가 나뉘는 오늘날의 살벌함이 처음 시작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이유가, 내가 유독 아팠던 연유가 있을 거라 믿었고, 증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신도시가 처음 생기고 그곳의 아이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곳의 어른들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그 속에서 진짜 삶이 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내가 증언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세상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듯, 획일화된 스타일을 따르고 소비를 하는 아이들 틈에서 소비는커녕 용돈 받아 쓰기도 벅찼던 나의 남루한 하루하루를 적고 싶었다. 나를 알아가야 할 시기에 남을 알아간다고 벅찼던 날들을, 내 삶에 왜 내가 없었는지를, 적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들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 시간들은 결국 나를 다시는 타임머신을 타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떤 장면에서 시작하고, 어떤 장면으로 끝을 낼까. 어떤 이야기를 넣고, 어떤 이야기는 뺄까. 어디까지를 진짜 사실로 채우고, 어디에서부터 허구로 메울까. 어떤 문장들을 나열해야 할까. 나는 나만의 문체를 갖고 있나.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 나는 왜 소설을 택했나. 소설에 나만이 담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인쇄한 종이를 앞에 두고 몇 장 넘겨보다 위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마구잡이로 집어던진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나는, 우두커니 앉아있다. 그리고 끼적인다. 지금의 이 답이 나오지 않는 엉망진창의 나를, 어떻게든 소설로 만들어 보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나를, 하필 아이들의 방학을 코 앞에 두고 이런 큰 일을 벌인 대책 없는 나를, 가감 없이 적는다.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나는 무엇부터 써야 할까. 아니, 나는 무엇부터 대답해야 할까.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이 글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니 어떻게든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 할까.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야 할까. 무슨 장면으로 시작해야 할까. 아니지, 그전에 내가 이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대체 무얼 쓰려고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