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쓸 것인가

by 박순우

시간의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독감으로 등원, 등교를 하지 않으면서, 나까지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만 박혀 있은 지 닷새가 흘렀다. 이번주는 내내 새벽에도 아이들 이마를 짚고 해열제를 먹이고, 뒤척이는 아이들 때문에 나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보니 아침에는 좀 늦잠을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면 남편은 이미 출근을 하고, 아이들과 나는 늦은 아침을 먹는다. 열이 내리면 말짱하게 놀이를 하는 녀석들이지만 독감 때문인지 통 입맛은 없다. 마트를 가지 못해 계속 냉장고를 뒤져 간신히 한 끼 식사를 차리는데, 아이들은 그때마다 이전처럼 맛있게 먹지 못하고 온몸을 비튼다. 어떻게든 먹어야 몸이 나아진다고 어르고 달래 밥을 먹이고 나도 한술 뜬다.


아이들은 어디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인지 크게 보채지는 않는다. 대신 게임을 하는 시간이 좀 늘었다. 아이패드로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시간 게임을 하고, 집에 있는 온갖 보드게임을 꺼내 놀이를 한다. 다행히 격리 전 도서관에서 새로 빌려온 책들이 좀 있어 그 책들을 꺼내 읽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깔깔대며 시청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놀다가 싸우면 중재에 나서고, 같이 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곁에서 함께 책을 읽기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대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남편도 집으로 돌아온다. 부랴부랴 밥상을 차려 저녁 한 끼를 먹고 나면 다시 아이들을 재울 시간.


이처럼 온종일 엄마로만 사는 날엔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의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된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가 그랬고, 삼 년 전 코로나가 처음으로 퍼지기 시작해 세상이 멈췄을 때가 그랬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나만의 시간을 아예 꿈도 꾸지 않아 억울함 같은 건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란 생각으로 일상의 의미를 찾으며 고된 하루하루를 버텼다. 코로나가 왔을 땐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는 마음으로, 나만이 아니라 모두의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지냈다. 지금처럼 이따금 아이들이 아파 갑자기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 때가 오면 억울함과 답답함이 몰려온다. 그럴 때면 조금씩 틈을 내어 읽고 쓰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거면 되었다고.


요 며칠은 그저 잇글 정도만 간신히 쓰고, 틈틈이 글을 읽는 걸로 만족을 해야 했다. 일상에 여유가 없어 그런 거지만, 편히 생각하면 글감을 스스로 찾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었다. 고작 그렇게 닷새를 보냈다고 막상 내 글을 쓰려니 머리가 하얘졌다. 첫째와 나눈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다음 글쓰기 모임 글감인 ‘공부’에 대해 써볼까. 저번에 쓰려던 그 글감은 어떨까. 머릿속에 번잡스럽게 부유하는 생각들은 많지만 쓸 만큼 정리된 주제는 잡히지 않는다.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써야 하나.


생각을 하다 보니 나 역시 짓눌리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최근 얼룩소에 많은 글쟁이들이 몰려오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된 이들의 글을 많이 읽은 터였다. 글 퀄리티의 상한선이 올라간 데다 보상은 갈수록 적어지고, 계속 글을 쓰는 게 맞느냐는 의문부터 글 쓰기가 어렵다는 소회까지. 읽을 땐 몰랐는데 그런 사연들이 어지러이 내 머리에도 박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런 생각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새삼 나를 점검한다.


사실 얼룩소라는 공간에서 오래 글을 써오면서 수없이 봐온 글들이다. 얼룩소의 앞날부터 보상에 대한 이야기, 전체 파이에 대한 이야기까지. 내 글과 타인의 글을 비교하고 내가 설 자리를 찾아가는 고민들. 얼룩소뿐만 아니라 얼룩커를 향해서도 오래 쓴소리를 해왔던 입장인 나는, 요즘 이런 이야기들을 부러 꺼내지 않는다. 지쳐서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얼룩소에서 오래 활동하기 위한 나만의 법칙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법칙이라고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 게 아니다. 얼룩소에서 별 일을 다 겪으면서도 버티다 보니, 글이라는 게 결국 플랫폼이나 세상과 싸우는 것이기 이전에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얼룩소는 개개 얼룩커의 말로 쉽게 변화할 플랫폼이 아니고, 얼룩커는 언제나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들며, 논쟁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고, 보상은 들쑥날쑥 기준이라곤 없으니, 이곳에서 내가 살 방법은 단 하나 내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얼룩소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라고 달랐을까. 얼룩소가 보상이 걸려 수면 위로 더 치열함이 잘 드러나긴 하나, 그 어떤 곳이든 드나드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서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 경쟁에 말려들고 일희일비할수록 결국 상처받는 건 나 자신이다. 온라인 플랫폼도 결국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 이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들은 한 인간이 한 사회에 적응해가는 고군분투기를 쏙 빼닮았다. 온전히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내 뜻대로 되지도 않는 세상인 것. 이런 정글에서 내가 설 방법은 단 하나, 나만의 의미를 찾는 것뿐.


지난날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고 흔들릴 때마다 걷잡을 수 없는 내면의 분노가 치솟았다. 그깟 세상이 뭐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나는 얼마나 나약하기에 쉴 새 없이 흔들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거냐고. 나는 세상을 탓하는 동시에 나약하게 태어난 나 자신을 욕했다. 그런 날들을 버텨내며 나는 진심으로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어떤 세상을 마주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고 싶었다.


그런 내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했던 건 시기와 질투였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 비교를 하는 데에만 그치면 되는데 그 비교는 결국 시기와 자격지심이 되어 나를 갉아먹었다. 의문이 들었다. 나를 흔든 건 세상일까, 나 자신일까. 세상은 좀 더 괜찮아질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풍파가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이 커다란 세상을 미약한 내가 바꿀 수는 없으니 나는 나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나로 서자.


시기와 질투만 버려도 세상은 꽤 가벼워진다. 비교만 하지 않아도 흔들림의 강도는 확연히 줄어든다. 세상을 바꿀 수 없어 나를 바꿨을 뿐인데, 나를 바꾸는 건 결국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다. 여전히 조금씩 흔들리지만 예전처럼 크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휘둘리진 않는다. 크게 주목받지 않아도, 큰 보상을 얻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지켰으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으니. 그거면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가는 게 때로는 제자리걸음 같지만, 이런 걸음이 모이고 모인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면 내가 서 있는 곳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곳이지 않을까. 곁눈질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사람과 글들이 모이다 보면, 결국 조금 다른 플랫폼을 조금 다른 세상을 만들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단 하나, 나를 바꾸는 일뿐이다. 그리고 나를 바꾸는 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같다. 그 작지만 큰 힘을 믿는다. 그러니 무엇을 쓸 것인가.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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