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심리학을 들여다보며 어린 나를 껴안는다
신도시로 이사를 간 건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3학년 때부터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가기로 한 터라 한동안은 한참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시험을 치러야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는 입학시험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줄 세워 반 배정을 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10반이었고, 이는 전교 10등으로 입학했음을 의미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교 등수를 알지 못하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전교 등수를 알고 나니 더 좋은 등수를 받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중학교 내내 반에서는 1등, 전교에서는 2등이었다. 성적이 우선인 세상이다보니 가만히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대놓고 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즐겼던 철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이사 간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아무리 신도시 아이들이 생활수준도 높고 공부를 잘 한다지만, 그래도 전교에서 2등이었는데 얼마나 등수가 떨어지겠나 싶었다.
1학기 중간고사 결과를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점수는 별로 내려간 것 같지 않은데 반에서 15등이었다. 전교 등수는 150등 언저리. 처음 받아보는 등수였다. 무리해서 이사를 하고 가게를 연 터라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였다. 학원도 가지 않고 거의 혼자 공부를 했다. 등수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에 오면 스스로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기말고사 때도 등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훔쳐보니 대다수가 유명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는 듯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건 내게 큰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공부의 벽이 느껴졌다.
이전 학교와 달리 전학 간 학교에서 나는 존재감이라곤 없었다. 신도시가 생긴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내 뒤로도 전학을 온 아이들이 서넛 더 있었다. 나는 그저 전학생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등수가 높아 가만히 있어도 존재가 드러나는 이전 학교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나는 어떻게든 나를 알리고 싶었다. 승부욕도 많았지만 우월해보이고 싶었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 올랐다. 등수가 벽에 부딪히니 나는 갈 곳을 몰라 헤맸다. 나를 드러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합고사를 치르고 고등학교를 들어간 뒤에도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는 계속 됐다. 고등학교에는 내가 구도심에서 전학 온 걸 모르는 아이들이 더 많으니 중학교 때와는 달리 더 당당해지고 싶었다. 중학교에는 내 출신을 두고 무시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대놓고 신도시가 구도심과 분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출신을 숨기고 특별함을 장착하고 싶었다. 비평준화로 성적이 비슷비슷한 아이들이 몰려 있다 보니 등수는 중학교 때보다도 더 형편 없었다. 공부에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성적으로 특별함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공부를 놔버렸다. 내게 그 당시 공부는 재미가 아닌 타인을 이기기 위한 도구였던 것.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내가 찾은 건 잘 나가는 써클 활동을 하는 것, 좋은 브랜드의 옷을 사서 입는 것, 잘 나가는 아이와 사귀는 것 같은 보잘 것 없는 방식이었다. 특별할 수만 있다면, 우월해질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하고만 싶었다. 보이지 않지만 학교 내에는 서열이 존재한다. 공부를 잘하거나 잘 노는 아이들, 외모가 뛰어난 아이들이 1순위에 들고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이 그 아래 서열로 깔린다. 그 서열에서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은 그 시절 나를 지배했다.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어린 내게 너무나 두려운 것이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은 온통 순위가 나뉘어져 있었으니까. 모두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 말하고 있었으니까.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나를 붙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평범해질 용기'에 대해 말하며 이렇게 지적한다. 타인보다 뛰어나려던 목표가 어그러지면 결국에는 최악을 선택한다고. 우월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열등하기로 작정하는 것이 더 특별하다고 여긴다는 것.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스스로가 보통에 머무르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수직으로 보고 조금이라도 더 위로 올라가려 아등바등한다. 더 나은 학교로 진학하고, 더 좋은 직장을 들어가고, 더 큰 차를 사려는 건 모두 이런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평범해질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우월도 열등도 없애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인정하라는 것. 타인을 경쟁 상대로 보지만 않아도 세상은 크게 달라진다. 내가 바뀌면 나를 둘러싼 세상도 변한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으면 삶은 쉽게 평정을 찾는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없고, 더 특별해지라고 자식을 닦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다수가 되면,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아이들을 키우면, 세상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모두가 같은 높이에서 손을 잡고, 나의 다름과 너의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밟지 않고,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 차별하지도 차별받지도 않는 세상을 꿈꾼다. 평범해질 용기를 마음에 품고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지려 몸부림쳤던 어린 나를 끌어안는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월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통의 삶도 위대하다고 되뇐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다짐한다. 네가 어디에 살든, 무엇이 되든 되지 않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응원한다고. 중요한 건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네 자신을 펼치며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어린 나를 끌어안으며 동시에 내 곁에서 숨쉬는 두 아이도 감싸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