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은 내 생일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태어난 나. 어린 날엔 내 생일이 핼러윈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이십대 때도 핼러윈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해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국의 문화를 한국에서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언제부턴가 핼러윈의 존재감은 커져갔다. 한 해 한 해 더해갈수록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듯 여기저기 핼러윈 장식을 하고 사탕을 나누며 분장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갔다.
사실 이런 문화가 탐탁지는 않았다. 기념일을 만들어 너무 상업화하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아무 날도 아니었던 내 생일이 특별한 어떤 날이 되어가는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도 핼러윈 파티는 꼬박 챙기는 행사가 되었는데 내 속으로 낳은 아이들도 내 생일보다는 핼러윈 파티를 더 즐기는 눈치였다. 엄마 선물 없어?하고 물으면 핼러윈 아이템들만 꺼내놓는 아이들. 이런 거 말고,하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마음을 좀 고쳐먹자고 다짐한 터였다. 시골에는 아이들이 즐길 거리나 행사가 많지 않은데 핼러윈을 핑계로 사탕도 나눠주고 아이들도 기뻐한다면 좋지 않겠냐는 지인의 말을 들은 뒤였다. 그 말을 듣고 내 생일이라 더 속좁게 굴었던 스스로가 좀 부끄러웠다. 그래 특별한 날이 하루라도 더 있으면 즐거운거지.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생일이니 받을 생각만 해온 것 같은데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지난 금요일은 학교 병설유치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날이었다. 핼러윈도 다가오니 사탕 선물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달달구리를 집어온 뒤 정성껏 포장을 했다. 핼러윈스러운 스티커도 출력해 붙였다. 무언가를 예쁘게 포장하는데 영 소질이 없지만, 좀 부족해도 마음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하니 내심 뿌듯했다. 사탕 선물을 준비했으니, 책도 맞춤으로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은 뒤 선물을 나눠주니 환하게 웃는 아이들. 그 해맑은 얼굴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는데…… 아이들을 재우다 같이 잠든 토요일밤, 뒤늦게 잠이 깬 뒤 무거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태원에서 압사사고가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 기사를 찾아보니 이태원 길거리에는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긴급하게 달려온 소방관들, 다급하게 심폐소생술로 살려내려는 손길들, 친구나 지인이 쓰러져 목놓아 우는 사람들, 그 와중에 핸드폰으로 아무데나 찍는 개념 없는 사람들까지. 기사를 보면 볼수록 끔찍한 현장 모습에 착잡함이 더해만 갔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다. 잠들 수 없는 이들이 많은 밤이기도 할 것이다. 한동안 너무 가물어 동절기 뿌리채소를 재배하는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만 갔는데, 이 글을 쓰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단비가 오는데,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내리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아수라장이 된 이태원의 거리와 목놓아 울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자꾸 아른거린다. 기적처럼 살아나는 이들이 많기를 바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고쳐먹은 마음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핼러윈의 악몽이라고들 하는데, 악몽이라고 얼버무리기엔 사고가 너무 생생하고 잔혹하다. 긴 밤이 될 것 같다.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