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따르는 삶으로 가는 중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숙제가 하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놓는 것. 다락에서 지난해 정리해둔 트리를 주섬주섬 꺼내와 예년과 같은 곳에 하나씩 놓아둔다. 그러고 보니 창문도 닦아야겠다. 여기저기 벌레들이 머문 흔적들과 비바람이 남긴 자국들이 보인다. 햇살이 종일 내리쬐는 자리에서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계절마다 햇살의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여름의 쨍한 햇살에 비해 가을의 햇살은 빛 번짐이 있어 조금만 창문이 더러워도 금세 티가 난다. 해의 각도도 여름에 비해 낮아 더 깊숙한 자리까지 햇살이 드리워진다.
창문을 닦을 때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부실한 손목 때문. 이리저리 손목을 돌려보다가 닦아도 장사를 할 수 있겠지 싶은 상태면 그제야 도구들을 챙긴다. 둘러보면 여기저기 온통 손이 해야 할 일이기에, 커피 장사와 육아로 부실해진 손목을 웬만하면 아끼려 한다. 당장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미루는 것. 그렇게 손목을 핑계로 나는 자꾸만 게을러진다. 그런 내가 몸을 일으켜 창문을 닦았다. 뭔가 뿌듯한데.
희한하게 트리를 꺼내놓는 날은 유난히 햇살이 찬란하다. 트리를 꺼내놓아도 될까 싶을 만큼 따뜻한 날이어서 꺼내놓은 손이 좀 민망하다. 섬이다 보니 아무래도 육지보다는 조금 늦게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바람이 멈춘 날은 봄으로 믿어도 될 만큼 공기가 온화하다. 그런 날에 겨울을 상징하는 트리를 꺼내놓자니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달력을 괜히 다시 확인하고는 괜찮다고 중얼거린다.
섬의 크리스마스는 어딘가 단출하다. 대도시 같은 화려함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처음 이곳으로 이주해왔을 때는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 좀 서운했다. 시내로 가야 조금 트리를 찾아볼 수 있고, 시골은 트리를 해둔 곳이 무척 드물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인지, 그동안 나이를 먹은 탓인지, 이제는 그마저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소박할 수도 있지 뭐.
해마다 다른 트리 장식을 해두는 곳도 많은데, 나는 몇 년째 같은 트리를 꺼내 둔다. 꾸미는 데 솜씨가 워낙 없기도 하지만,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많이 사면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 언제부턴가 그게 내게는 너무나 불편한 일이 되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앉아서 마시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테이크아웃 잔에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매일 마주한다. 그때마다 불편한 마음과 그럼에도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의 의무감이 맞부딪힌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테이크아웃 용기를 아예 치우지는 못했다. 밥벌이를 핑계로. 드시고 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소심하게 권할 뿐이다.
꽃을 잘 꺾지 못한다. 온화한 기온으로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어나 굳이 꽃집에 가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꽃을 쉽게 꺾을 수 있다. 주변의 많은 가게들이 그렇게 꺾은 꽃으로 가게를 장식한다. 꺾지 않으면 오래 피어 있지만, 꺾어둔 꽃은 오래 가야 열흘쯤 생기가 있다. 그 뒤로는 악취를 뿜으며 서서히 죽어간다. 처음 카페를 오픈하고는 흔한 들꽃 하나 차마 안으로 들이지 못하고, 꾸며야 하는 본업과 꺾지 못하는 결벽증 사이에서 자주 갈등했다. 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걸 주저한 시간은 꽤 길었다. 타인의 시선이 먼저이고 보이는 게 우선이었기에, 온전히 내 마음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고.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좀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건 이제는 내 마음대로 선택하기 때문이리라. 눈치 보지 않고 누가 뭐라 하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간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로 접을 때도 있지만, 작은 부분들에서는 내 생각을 고집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몸과 마음이 불편한 일들을 줄여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기 싫은 곳에는 가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삶. 굳이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 굳이 하지 않는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원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지 않아도, 원하지 않는 것들을 좀 덜어내기만 해도, 삶은 꽤 살만해진다.
내가 깨달은 삶에 대한 것들을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늘 채울 때보다 덜어냈을 때 조금 더 가벼운 내가 되었다. 시선을 가까이 둘 때보다 멀리 둘 때 더 평온한 마음이 되었다. 사실 알면서도 밥벌이 앞에 초라해질 때가 참 많다. 그럼에도 오래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나를 다잡는다. 크게 덜어내진 못하더라도 작은 부분들을 계속 덜어내자고. 그렇게 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완전히 가벼운 내가 될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