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겨울의 기억
나란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동기부여가 안 되면 몸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동기부여가 된 상황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는 열의를 보인다. 고3이 되었지만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고 나의 이런 면은 변하지 않았다. 공부나 대학에 동기부여가 돼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다면 참 좋은 그림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신분은 고3이었지만, 전혀 고3답지 않은 날들을 보냈다.
"누나 왜 여기 있어요? 고3 아니에요?"
한 학년 아래인 후배는 툭하면 놀러 나온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니까 뭐 그냥 놀려고. 공부? 재미없는데... 왜 해야 하지? 대학은 왜 가는데? 그러면 인생이 뭐가 달라지는데?"
다른 친구들은 시청률 40%를 넘기며 전 국민이 보다시피 한 [가을동화]를 보느라 공부를 못했다며 짜증을 내는데, 나는 드라마는커녕 아예 집구석에 붙어있지를 않았다. 오락실에 가서 신나게 게임을 하거나 당구장에서 뿌연 담배 연기 속에 당구를 치거나, 노래방에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나와 친한 친구들은 전부 흡연자였고 늘 내 교복에는 진한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공부를 하긴 했다. EBS 문제집 몇 권을 사서 과목별로 아주 적은 분량만 매일 풀었다. 고3다운 전투적인 공부는 전혀 없었고, 막 입학한 초등학생 마냥 학습지 풀듯 한 장씩 두 장씩 과목별 문제만 풀었다. 문과인데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 이상한 학생이었고, 문과로 대학을 가는데 딱히 쓸모가 없는 수학 공부만 조금 했다. 좋아한다는 동기는 있었으니 나름 일관된 인간이었다. 참 밤샘 같은 건 없었다.
처음으로 춥지 않은 수능이었다. 매해 수능날마다 한파가 몰아쳐 그날의 추위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는데, 예상을 깬 너무나 온화한 날이었다. 수능날 내 목표는 딱 하나였다. 아빠의 차를 타고 수능 시험장으로 가는 것. 고등학생이 되면서 특별 대우를 받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친구들을 기다리는 보호자들의 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차는 없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거리였고, 나는 3년 내내 거의 걸어서 다니거나 가끔 마을버스를 탔다. 늦잠을 자도, 몸이 아파도, 특별한 일이 생겨도 집과 학교를 오가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고3이지만 특별대우 같은 건 없었다. 수능날은 그래도 태워주시겠지. 수능날인데도 알아서 가라고 하진 않으시겠지. 딱 하루 편하게 등교하는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장이 발표되면서 내 꿈은 와르르 무너졌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의 학교였던 것. 뛰면 1분... 억수로 운이 좋았던(?) 나는 결국 3년 내내 단 한 번도 아빠의 차를 얻어 타지 못했다.
공부를 거의 안 한 날라리 수험생이었는데 희한하게 문제가 술술 풀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주의 기운이 나한테 쏠리는 건가. 알고 보니 역대급으로 쉬운 수능이었다. 만점자가 줄줄이 나왔고, 기대를 하든 안 하든 누구나 더 좋은 점수가 나오는, 변별력이라고는 없는 시험이었다. 시험 결과는 꽤 좋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 문제만 틀려도 전국 등수가 훅 떨어졌다. 수능은 쉽든 어렵든 잔인한 세계였다.
수능을 본 다음 날 모든 책을 재활용센터에 갖다 버렸다. 교과서도 참고서도 문제집도. 책상도 사물함도 모두 텅 비어버렸다. 나는 마치 내 과거를 전부 청산하기라도 한다는 듯 책을 내다 버렸다. 책을 두고 나오면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재수를 하게 되면 어쩌지.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대학을 못 가면 어쩌지. 붙으면 가고 안 붙으면 안 가는 거지 뭐. 내게는 꿈도, 알아가고 싶은 세상도, 절실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저 자유롭고 싶었다.
그동안 그렇게 놀아놓고도 나는 수능만 보면 더 신나게 놀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눈치도 보지 않고 사회적인 어떤 압박도 없이 '논다는 건 바로 이거야!'싶을 만큼 기갈나게 놀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좀 놀다 보니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노는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던 것. 바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스티커 사진 촬영을 하는 곳이었는데, 동전을 바꿔주고 필름을 갈아 끼우는 단순한 일이었다. 사장은 얼굴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알바생들끼리만 있는 곳이라 일은 무척 편했다. 당시 알바 시급은 대개 2200원 정도였는데, 내가 구한 알바는 무려 2500원이었다.
한 달을 일하니 돈은 수십만 원쯤 되었다. 열아홉에게 그 돈은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정말 큰돈이었다. 돈도 생겼겠다 대학을 가기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원 없이 놀았다. 세상 걱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오직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시간과 돈을 탕진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보기 드문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이브날 밤, 알바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니 온 세상에 하얀 담요가 덮여 있었다. 그 담요 위로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거리에 유일한 발자국을 남기며 자유를, 거리를, 밤을, 만끽했다.
지원한 대학 중에 간신히 한 곳이 붙어 가기로 했지만, 아무 대책도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세상은 어떤 무게를 지녔는지, 나를 둘러싼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미지의 세계를 앞에 두고 묘한 긴장과 설렘이 뒤범벅된 가슴으로 그 해 겨울을 보냈다. 어른들은 그 누구도 내가 앞으로 마주할 진짜 어른들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홀로 스무 살이 되었다. 무엇이 내게 밀려오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