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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안 되는 일

by 박순우

'시간'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이주에 한번씩 에세이를 쓰고 합평하는 모임의 이번 글감이 '시간'이다. 마감까지 나흘 남은 시점, 오늘은 글을 써야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글 하나를 간신히 간신히 써냈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간은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기에, 사실 그동안 관련 글을 여러 번 썼다. 그냥 예전에 썼던 글을 낼까. 성의가 없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글을 쓰는 게 힘들다. 더 정확히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뒤 관련 글이 아니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감각 어딘가가 콱 막혀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생일을 이틀 앞둔 밤이었다. 아이들을 재우다 나도 같이 깜빡 잠이 들었다. 보통 이런 경우 새벽 두세시는 돼야 눈이 떠지는데 열두시가 좀 안 된 시간에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한 단톡방에 이상한 기사 하나가 공유돼 있다. 클릭하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이태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상태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태원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압사 사고가 일어나 수십 명이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는 믿기지 않는 뉴스. 아무래도 안 되겠다. TV를 켜봐야겠다.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갔다. 아직 잠들지 않은 남편이 있었다. 이태원에 사고가 났대. 남편도 좀 전에 알게 됐다고 했다. TV를 켰다. 뉴스 속보 이태원에서 압사사고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앵커의 말과 자막. 화면 속에는 수십 대의 소방차와 구급차가 보이고 심정지 환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누워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한참 뉴스에 시선을 고정하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아도 선명히 되살아나는 이태원의 모습.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소방당국이 발표한 첫 공식 사망자수가 나왔다. 59명. 믿기지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정말 실화인가.


이리저리 기사를 뒤지고 사건 현장을 알리는 수많은 조각들을 머릿속으로 조합하면서,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이해해보려 해도 도무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죽어간 사람들은 대다수가 이십 대일 것이었다. 짧은 글을 하나 쓰고,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은 건 새벽 네시 무렵이었다. 이제는 정말 자야 한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마저 이태원을 떠돌고 있었다. 꿈 속에는 이십 대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등장했다.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아이들이 부산스럽게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시계는 아침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확인한 사망자 수는 151명이었다. 지금은 다시 늘어나 156명이 되었다.


지난 해는 생일을 이틀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은 곳으로부터 이상한 수치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아, 생일을 찜찜한 기분으로 지냈는데... 올해는 이태원 참사로 또다시 생일 같지 않은 날을 보내고 말았다. 나이가 먹어 이제 생일이 예전처럼 들뜨는 날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생일인데... 남편과 생일이 하루 차이라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이틀인데, 나는 올해도 또 우울하게 찜찜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가을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월의 이름은 여행이라는 글을 쓰며 시월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는데, 앞으로 다가올 시월은 얼마나 더 서늘하고 아플까 싶은 마음에 콧잔등이 자꾸 시큰거렸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기력감, 너무 많은 청춘들이 죽었다는 절망과 슬픔,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분노가 번갈아가며 나를 덮쳐왔다. 세월호 때 나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였던 한 친구는 일부러 기사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있다보니 더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아 차마 기사를 마주할 수가 없다는 것.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생각 때문일까. 나는 괴로워도 더 기사를 찾아보고,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더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는지 예의주시했다.


어떤 의무감이었던 것 같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겨우 8년만에 또 벌어진 참극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른으로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잘못 가고 있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그런 의무감에 사로 잡혔다. 나도 안다. 내가 목소리를 내봤자 글을 쓰는 게 전부라는 것을, 시골에 처박혀 사는 내가 조문도 할 수 없는 내가 고작할 수 있는 건 마음속 애도와 글쓰기 뿐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거라도 하기 위해 나는 나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게라도 이 미안함을 갚기 위해 내 마음을 내어놓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글 뿐이지만, 그래도 글이라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글로 목소리를 내고, 글로 미안함을 말하고, 글로 잘못 가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으려 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나를 달랜다. 일년 중 가장 조용한 달 11월이다. 섬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적은 달, 내 일상에도 특별함이 없는 달, 겨울의 예감으로 스산함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달. 그 조용한 달이 분노와 원망과 슬픔으로 한껏 어지럽다. 시간은 약이지만, 때로 어떤 일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극복되지 않는다. 그런 사건이 또 벌어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다. 한동안은 이태원을 떠난 다른 글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 또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 할까.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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