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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Nov 22. 2022

서른 살의 방학

  반년 동안 이어온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멀리 익숙한 도시가 보이기 시작하자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행을 하다 해가 바뀌어 어느덧 서른이었다. 열다섯 살부터 이곳에 살았으니  인생의 절반을 보낸 셈이었다. 절반이라지만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는 생애를 통틀어 모든 경험이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는 시기다.  시간들을 모두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사랑도 도전도 좌절도 모두 처음이었고, 중심이 없던 나는 자주 쓰러지거나 흔들렸다. 고뇌와 슬픔과 아픔이 반복되는 청춘이라는 시간은 비교와 질투로 얼룩진 도시를 만나  고통스럽게  안에 새겨졌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슬픔과 아픔이 온몸을 짓눌렀다. 더는 이곳에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반복됐다. 부모와 한 공간을 쓰는 것도 이제는 정말 그만 하고 싶었다. 하루 빨리 독립을 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뉴질랜드에 머물렀을 때와 여행을 다니던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홀로 살기는 처음이었다.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가 아까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어느 도시로 갈까 고민을 하다 A시를 떠올렸다. 경기도지만 원래 살던 곳과 꽤 멀었고 완전히 반대방향이었다. A시에서 취업을 하면 집에서 다니기가 불가능하니 부모도 나의 독립을 반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곳에 일자리를 얻었다 거짓말을 하고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작은 원룸이었고 티브이,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이 기본 옵션으로 들어가 있었다. 나는 책상과 침대, 옷가지 등을 그곳에 풀어놓고 첫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일자리를 구했다는 건 거짓말이었고, 긴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계획이 없었다. 단지 쉬고 싶었다. 숨막혔던 곳에서 이제야 간신히 벗어났고 긴 여행으로 몸과 마음도 지쳤으니, 모든 걸 내려놓고 온전함 쉼을 누리고 싶었다. 서른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제대로 쉬어본 적은 없었다. 확연히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눈치를 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전히 비어있는 시공간의 자유를 한 번쯤 만끽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른 살 백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는 찼는데 돈도 없고 미래도 없고 생각도 없는 한심한 인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돈은 별로 없었지만 아끼면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을 정도였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어떤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생각은 내가 깨닫고 결심한 것들로 가득차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지 않았다. 서른은 공자가 말한 이립(而立)의 나이였다. 서른 살 백수 주제에 이립이란 말과 퍽 어울린다는 생각을 감히 하며 피식 웃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밤과 낮은 자주 바뀌었고, 지칠 때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다. 혼자 울다 웃었고 종종 산책을 하고 책을 읽었다. 여행을 다니며 찍었던 사진을 한쪽 벽면 가득 걸어두고 자주 시선을 고정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돌아다녔는지 종종 내 자신에게 물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딛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한 번씩 떠올리긴 했지만,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최대한 내려놓으려 했다. 그 순간만을 느끼려 애를 썼다. 아니 애조차 쓰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으니 주변에서 결혼 전 독립을 하는 경우는 희귀했다. 종종 친구나 친척들이 원숭이 보듯 나를 궁금해하며 찾아왔다. 좁은 집이었지만 차를 내가고 밥을 해주었다. 잠을 재워주기도 했다. 밤에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경찰서에 전화해 순찰을 부탁했다. 술 취한 윗집 남자가 현관문 번호키를 누를 때는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점점 적응해갔다. 혼자인 것에. 혼자 사는 것에. 혼자 마음대로 사는 것에.


  그러다 불현듯 엄마가 되고 싶었다. 진심으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무렵 나를 찾아왔다. 좋은 부모란 무엇인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백수에 혼자 살며 결혼은 기약이 없어 타인의 눈에 맥락이라곤 없었지만, 나는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을 진지하게 고심했다.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집을 탈출하고 나를 옭아맸던 도시를 마침내 벗어난 내게 찾아온 이 꿈은, 사실 내게는 가장 맥락이 있는 유의미한 길이었다. 온전한 쉼이 가져다준 귀한 마음이었다.


  백수 생활을 마무리 할 무렵 충동적으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대비가 종일 대지에 내리 꽂히던 여름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듯 눈부시게 화창했고 나는 이른 시각부터 올레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오래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나온 사람이었다. 얼마 안 가 우리는 커플이 되었다. 삼십 대에서는 보기 드문 백수 커플이었다. 함께 전국 이곳저곳을 떠돌며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한동안 여행을 다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밤, 내가 중얼거렸다. 결혼이나 할까. 이내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그도 나도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음해 우리는 식을 올렸다.


  이따금 그 시절을 떠올린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한 휴식을 보낸 시간과 공간. 몇 달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시공간은 내 몸 안에 나이테처럼 새겨져있다. 마치 솔기 하나 없는 가벼운 옷을 걸친 듯한, 내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위로한, 오롯이 나만을 위했던 귀한 날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직 내가 생각한 것들로 채우고, 내가 바라는 날들로 곧게 향하는, 그런 삶으로 비로소 나아갈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방학이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휴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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