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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Nov 30. 2022

어떤 시간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쓸 수 있는 글

천현우의 <쇳밥일지>를 읽고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엄청나게 잘 산 적은 없지만,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아빠가 몇 번 큰 돈을 날리긴 했지만, 백 원 짜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엄마를 둔 덕에, 우리 집은 크게 망하거나 크게 성공하는 법 없이 그렇고 그런 수준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런데도 나는 전학을 가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빈부격차 앞에서 심하게 휘청였다.


내가 당시 느낀 건 절대적인 빈곤이 아닌, 상대적인 빈곤이었다. 메이커 펜을 잔뜩 가진 이들이, 여러 벌의 고급스런 옷을 가진 이들이, 넉넉한 용돈을 쥔 이들이 나는 그렇게 부러웠다. 그 작은 격차는 쌓이고 쌓여 자꾸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그 시간들을 회복하는 데 꼬박 십 년이 걸렸다. 상대와 나를 비교하며 분노하고 속상해하는 일을 그만 둔 지도 십 년이 조금 넘었다. 뒤늦게 나는 그 시절 내가 갖지 못한 게 돈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여기 절대적인 빈곤으로 오랜 시간 고뇌한 한 청년이 있다. 이름은 천현우. 이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얼룩소에서였다. 처음에 그는 얼룩소의 외부 필진이었고, 정기적으로 글을 올렸다. 출중한 글솜씨에, '글 쓰는 용접공'이란 타이틀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보니 그의 프로필 설명이 바뀌어 있었다. 'alookso 에디터'. 얼룩소의 객원 멤버에서 정식 멤버가 된 것이다. 용접공에서 기자의 길을 가게 된 드라마틱한 인생의 주인공이니 당연히 그가 걸어온 삶도 궁금했다. 나는 늘 이면이 궁금하다. 지금 보이는 모습을 갖기까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나는 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핀다. 지금의 그가 이전의 그는 아니지만, 분명 이전의 그도 지금의 그 안에 녹아있기에.


<쇳밥일지>, 그가 걸어온 길을 가감 없이 담은 책의 제목이다. 펼치자마자 한 사람의 인생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책이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증언하는 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화의 이야기. 성장소설을 유독 사랑하는 나는, 그런 이야기 역시 격하게 사랑한다. 그런 책을 읽고 나면, 책을 덮고 한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글쓴이의 이후 삶에 대한 무한의 응원. 이 책 역시 그랬다.


가정에서 겪는 폭력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어린 날의 모습,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던 짐 같기도 굴레 같기도 한 삶,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온갖 멸시 속에서도 조금 더 나은 길을 선택하려 순간순간 노력했던 모습까지. 저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과거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서술한다. 특히 타인의 호의와 진심을 차마 받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대목에서는, 코 끝이 찡해져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어떤 시간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비로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그 지점에 이 책이 놓여있다.


기억에 남은 문장 몇 개를 옮겨본다.


'고졸'이란 딱지는 수갑이며 죄수복이자 족쇄나 다름없다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 공설운동장 부근을 배회했다. 대학을 강요하는 세상이 못마땅했다.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사람 착하고 몸 건강하며 상식 있는 것만으론 부족한 걸까. p18-19
저 너머에서 노동하는 모든 사람. 그들 모두가 그저 살고 싶기에 살아가는 걸까. 죽음에 자꾸 이끌리는 마음을 책임감의 갈고리로 삶까지 끌어당기는 건 아닐까. 내 육신의 죽음만으론 나에게 닥친 불행들까지 죽일 수 없다. 불행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옮겨가겠지. 그럴 바에 살아남아 불행과 싸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p100-101
대학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스펙을 쌓으려 전쟁 치를 때, 나는 이력 한 줄 남지 않는 혼자만의 전투에 골몰했다. p195
우리가 공장 바닥 전전하며 보낸 이십대는 그저 통장에 찍힌 얄팍한 숫자 따위가 대표할 수 없다. 사회에서 '못 배운 놈년들'로 통칭당하며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는, 자존감을 찌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저항한 결과, 삶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헤어지는 길에 은주와 나는 약속했다. 우리의 삼십대는 결코 불행으로 끝마치지 말자고. 다시 만났을 땐 집, 차, 돈, 주식 따위 얘기밖에 남지 않은 멋없는 마흔 살이 되지 말자고. 충충한 가로등 빛 아래, 첫 노동을 함께했던 동창의 등이 멀어져갔다. p246


겹겹이 나이테를 새기듯 온 몸으로 부딪혀가며 깨달은 것들은, 책으로 배운 세상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닌다. 책은 다른 세상에 눈을 뜨기에 가장 적절한 수단이지만, 여전히 진짜 경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데 만일 온 몸에 새겨진 그 경험들을 녹여 책을 쓴다면, 그 글이 지닌 힘은 상상 이상일지도 모른다.


천현우라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문장이 이 시대에서 귀하게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리라. '글 쓰는 용접공'이라는 수식어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한 책'이라는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미래에 어떻게 쓰일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감내해야만 했던 힘겨운 삶이 있다. 이 책에는 그 삶의 궤적들이 글자로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작가는 쓰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안 쓰면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믿는다. 한때 몸 담았던 소설반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이자, 소설가가 된 한 언니가 내게 다시 돌려준 말이다. 천현우라는 사람이 통과해온 시간들은 어쩌면, '쓰고 싶은 사람'에서 '안 쓰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전투에 골몰하며 보낸 날들이 있었다. 그 시절을 통과한 뒤에야 나는 내 글을 쓸 수 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건 글만이 그 전투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남은 게 글밖에 없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 그런 사람의 글을 만나면 반갑다.


이제 책을 덮었으니, 무한의 응원을 보낼 시간이다. 더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그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스스로 운명의 길을 찾아내고 마침내 열어젖힌 그의 앞으로의 날들을 성원한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 결국 글을 써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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