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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로 살았던 시간의 기억 1

by 박순우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기쁨이나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해본 적이 없다. 분노나 슬픔도 마찬가지다. 화가 나도 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안으로 삼켰고, 슬픔도 꺼이꺼이 목 놓아 울기보다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편에 가까웠다. 어릴 땐 눈물도 흘리면 안 되는 줄 알고 참은 적이 많았다. 감정은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게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나보다 힘든 삶을 사는 엄마를 앞에 두고, 내가 더 힘들다고 징징댈 수는 없었다. 내 감정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축적되어 갔다.


일찍이 감정 감추는 법을 터득하다 보니 타인은 내 안에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잘 몰랐다. 타인은 속일 수 있었지만, 내 자신에게까지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느끼는 나는 누구보다 감정기복이 극심한 사람이었다. 화가 났다가, 기분이 좋았다가, 슬프고 우울했다가, 다시 좀 견딜만 한 과정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런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사는 건, 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런 내가 타인에게 딱 한 번 격하게 분노한 적이 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꼭 움켜쥐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분노의 말들을 쏟아내며, 눈물을 쏟은 사건. 오래 함께 일해온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는 성적 농담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누구와 잤다는 둥 몇 번을 했다는 둥, 그런 말들을 일상적으로 내게 쏟아내던 사람. 고된 업무였고 워낙 일로 얽혀있는 관계인데다, 성적 농담이 회사에서도 용인되던 시절이었다. 불과 십수 년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피해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매일 쏟아내는 성 경험 이야기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인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힘든 일을 함께 해나가고 있던 사람이었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그의 말들을 견뎌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성적 농담을 빼고 어떤 면에서는 괜찮은 사람이기도 했다. 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었고, 고지식해 사람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나를 대신해 많은 관계들의 앞에 서주었다. 그런 면들에 정을 붙여가며 오래 함께 일을 했다. 나는 지방지 정치부 기자였다.


철칙으로 세운 건 내가 그 농담에 휘말려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바닥이었고, 대낮에도 종종 술을 마셔야하며, 남자가 훨씬 많은 사회였다. 입을 잘못 놀리면 이상한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는 곳. 그러다 어느 날 타사 여기자 한 명과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선배가 나에 대해 성적인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 구체적으로는 내가 어떤 도구를 이용해 자위를 한다는, 한번도 내 입에 올려본 적도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였다. 설마 했는데... 올 게 왔구나. 놀람은 충격으로, 충격은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얼마나 더 많은 말들을, 얼마나 더 많은 사람에게 했을지 알 수가 없으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선배의 얼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이 바닥에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까.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고민하던 중에 친하게 지내던 타사 여기자 선배를 만났다. 아무리 평소 감정 숨기는 걸 잘 하는 사람이라 해도, 당시까지 그러지는 못했다. 미소조차 지을 수가 없었으니까. 내 얼굴을 보고 선배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대체 무슨 일이냐고. 나는 결국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선배는 욕지거리를 뱉어가며 나보다 더 크게 분노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의외로 진짜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더 큰 분노를 표출했다는 것.


나보다 더 분노한 선배가 나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성적 험담을 한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의 출입처는 지방 의회였다. 타사 기자들이 바글거리는 그 곳에서, 선배는 내게 들은 말들을 큰 소리로 쏟아내며 욕을 퍼부었다. 물론 나는 현장에 있지 않았고, 전해 들었다. 몸이 진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건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직후부터였다. 선배의 행동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적어도 나를 위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행위였다. 소문은 더 삽시간에 퍼져나갈 것이었다.


기사를 마감하러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성적 험담을 한 선배를 마주해야 했다. 어떤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꺼내 보여야 하나. 사무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을 것이었다. 감정과 나를 분리하고 이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웬만한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도망을 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커질대로 커져 있었고, 피해자인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날 사무실로 향하던 내 발걸음 하나하나를 기억한다. 커다란 모래 주머니를 단 것마냥 무겁디 무거웠던 그날의 발걸음.




*언젠가는 쓰게 될 이야기를 불현듯 시작합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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