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 어디야? 사무실로 들어와. 이렇게 그냥 나가면 어떡해. 대체 무슨 일이야. 그 놈의 자식, 입이 방정이더니 내 한번 일 낼 줄 알았지. 들어와서 얼굴 보고 얘기 합시다."
전화가 빗발쳤고, 말을 이어가는 건 내게 크나 큰 고통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도망 나왔지만,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모두 내 편을 들어주었다.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아래 후배부터 동료 기자들, 부장님, 국장님, 이사님까지... 쌍욕을 해가며 H를 나무랐다. 실제 앞에서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H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들려오는 말로는 출입처와 사무실에서 망신을 당한 걸 억울해 한다고 했다. 평소 자신이 음담패설을 잘 하는 걸 자랑처럼 여겼으니, 무엇이 왜 잘못인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이 바닥에 있는 한, 업종의 특성상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H선배나 나 둘 중 하나는 아예 이곳을 떠나야 했다. 내가 될 수는 없었다. 피해자인 내가 떠난다면 그건 싸움에서 지는 꼴이었다. 어떻게든 H를 내보내야 했다.
회사를 믿어 보기로 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런 징계도 없이 지나가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계속 얼굴을 맞대고 살란 말이었다. 사과할 생각도 없는 사람의 사과를 받고 이 상황을 끝내라고 나를 설득해왔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온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사람에게, 온 세상의 시선이 꽂혀있는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너무나 가볍게 말하고 있었다.
꼭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점점 면접을 본 곳에서 연락이 꼭 오기를 바랐다. 이 회사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H와 친한 기자들이 많았다. 사무실이라도 달라져야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사나흘 후쯤 연락이 왔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곧 이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직이 정해져 이런 일을 벌였다는 둥, 나가는 마당에 회사를 뒤집었다는 둥, 망신을 줬다는 둥... 면접 결과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다. 남은 월급과 퇴직금을 요구했더니 결국 돈이었냐며 나를 대놓고 깎아내렸다.
믿었던 후배마저 시큰둥했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후배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의 사수였다. 그런 그는 처음에는 내 행동이 당연하다고 하더니, 점점 내가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는 뉘앙스를 비치기 시작했다. 같은 남자였기 때문일까. 내가 곧 나간다는 걸 알고 업무의 압박에 더 나를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믿었던 후배가 내게 등을 돌리는 건 심정적으로 감내하기가 버거웠다.
K선배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드문드문 안부만 물어왔다. 그녀와 마주하는 것조차 내게는 큰 고통이었다. 나는 분명 억울한 피해자였고, 세상이 다 알게 됐는데,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온 몸이 더럽혀진 채 세상 밖으로 쫓겨난 느낌이었다.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하던 나였지만 더이상 감출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왈칵 눈물을 쏟았고,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잦았다.
기자였으면서도 막상 피해자가 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 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정신을 좀 차린 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제일 먼저 경찰서 여성청소년계를 찾아갔다. 예전 출입처로는 차마 갈 수가 없어 대신 집 근처 경찰서를 찾았다. 사건을 처음부터 자세히 이야기해야 했다. 이게 처벌이 가능한 일인지 확신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무형의 말만 있을 뿐, 증거도 실체도 없는 사건이었다. 나는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왜 찢어졌는지를 증명할 수가 없었다. 상담을 한 경찰은 직업이 특수하니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는 있지만,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입증을 한다해도 처벌은 약할 것이었다.
직장에서 내쫓을 수도 없고,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조언한 건 한 친구였다. 회사에서도 경찰서에서도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에 시민단체에 연락을 하면서도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이대로 사건을 묻을 수는 없기에, 연락을 취했다. 제일 먼저 연락한 건 한국여성의전화였다. 피해 입은 여성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단체였다. 다시 처음부터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다행인 건 내 이야기를 듣고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공감해주었다는 것이다. 공감만 해준 게 아니라 방법도 하나씩 찾아주었다.
시민단체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여성의전화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다산인권센터를 연결해주었다. 각 단체에서 활동가들이 한 명씩 나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함께 논의해주었다. 회사에서 내보내지 않는다면, 내보낼 수밖에 없도록 기자협회 측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럴려면 자료들을 취합해야 했다. 내 사건 하나만으로는 기자협회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러 사건을 모아야 했다. H와 인연이 있는 여기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내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정신과 진료 기록도 청구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움직여주고 있었다. 사건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조금씩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건 이후로 처음 만난 한 줄기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