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바보 같은 년이 되고, 행동을 하면 독한 년이 된다. 이런 류의 사건에서 대다수의 피해자가 받는 시선이다. 가만히 있으면 밟아도 꿈틀 대지 않는 누구나 함부로 해도 되는 여자가 되고, 어떻게든 처벌을 받게 하려고 동분서주하면 물귀신 같이 물고 늘어지는 기가 센 여자가 된다. 둘 중 하나라면 나는 차라리 독한 년이 되고 싶었다.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피해자가 왜 더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할까. 피해자가 왜 고개를 떨구고 걸어야 할까. 피해자가 왜 쫓겨나야 할까. 그런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힘을 내 뛰어야 했다.
시민단체의 지원이 생겼다고는 하나, 탄원서를 받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H와 평소에 친분이 있는 여기자들을 죄다 찾아다녔다. 진짜 그런 이야기 한 적이 없느냐는 물음에는 하늘이 무너졌다. 맹세코 그런 말은 입에 담은 적도 없다고 강조해 말해야만 했다. 여전히 어딘가에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의심을 가진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설득하며, 사정사정해가며, 탄원서를 한 장 한 장 늘려갔다.
사연은 넘쳐흘렀다. 시도 때도 없이 음담패설을 입에 담는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는데도 그동안 묵묵히 듣고만 있었던 여기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기자이면서도, 남성 중심적인 음담패설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한참 전이었고, 여성들이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일상적인 성폭력에 노출된 사회였다. 남자들이 모이면 여자들의 외모에 대해 품평회를 하거나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게 당연하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탄원서를 받았고 사건 경위서도 정리해 두었다. 기자협회 OO지부에 H 제명 건에 대한 임시총회를 열어달라고 시민단체와 함께 요청했다. 용기를 내어 정신과에도 갔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신과는 대중적이지 않았다. 진료를 신청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 사건이 일어난 뒤로는 하루에도 수차례 울고 땅이 꺼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다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내가 어떤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 또 입을 열어야 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차근히 말을 이어갔다. 의사는 퉁명스러웠다. 내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모니터만 쳐다보더니, 내 말이 끝나자 별 대꾸도 없이 우울증 약을 처방해주겠다는 말만 건넸다. 갑자기 화가 치솟았다. 물론 우울증 진단이라도 받으려고 발길을 했지만, 내게 필요한 게 꼭 진단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작은 공감의 말 한마디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아무런 공감도 없이 우울증 약이나 처방해주겠다는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이게 전부냐는 나의 질문에 의사가 말했다. “어차피 우울증 진단서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병원을 잘못 찾아간 걸까. 모든 정신과 의사가 다 저런 걸까. 입을 열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다른 병원에 가볼까 싶었지만, 또 저런 의사를 만날까 겁이 났다. 상처받은 가슴이 더 너덜 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은 하나도 먹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제와 무너질 수는 없었다.
기자협회 OO지부 임시총회를 앞두고 H가 한번쯤 전화를 걸어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다 새로 옮긴 직장 사무실로 갑자기 H가 찾아왔다. 내게 등을 돌린 후배도 함께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놀란 나는 온몸이 다시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기도 싫었다. 재게 걸음을 옮겨 사무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새 직장 선배들은 내게 꽤 호의적이었다.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었지만 깊이 묻지 않았고, 사건과 관련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주었다. 그중 한 선배가 사무실 앞에서 H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게 다가왔다.
"사과하고 싶다고 찾아왔다는데..."
"사과받을 마음 없다고 가라고 해주세요."
선배는 나 대신 그냥 돌아가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H와 후배는 선배의 말을 듣고는 사무실 앞을 조금 서성이다가 돌아갔다.
갔다는 걸 확인한 후에도 한동안 몸이 경직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말이 많은 사회였다. 정보라는 이름으로 온갖 말들이 범람하는 곳이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아마도 제명만은 막아보려 왔을 것이었다. 만날 수는 없었다. 사과는 피해자가 받을 준비가 됐을 때 해야 한다. 아무 때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뱉는다고 해서 용서를 받을 수는 없다. 사과를 한다 해도 받을 마음이 없었다. 사과를 하려면 진작에 했어야 한다. 이제 와서 하는 사과는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나는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았다.
그동안 나를 도운 활동가들과 함께 임시총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준비한 원고를 읽어야 했다. 사건에 대해, 내 심경에 대해, 어떤 처벌을 원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당시 내가 시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다. 무너질 때마다 간신히 버티며 이 순간만을 위해 달려온 몇 달이었다. 사건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피해자 대표로 앞에 나서서 원고를 읽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원고를 손에 꼭 쥐고 자리로 갔다. 다시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