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된 나의 하루를 종종 떠올린다. 일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온갖 의무와 소리에 시달릴 때면 고요하디 고요할 것만 같은 나의 노년을 떠올린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돋보기 안경을 추켜쓰는 허리가 좀 굽은 할머니가 된 나.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먼저 집의 위치를 떠올린다. 지금 살고 있는 섬을 떠나 대도시로 갔을 것 같다. 젊고 기운 넘칠 땐 시골에 살고 늙으면 도시로 가야 한다. 병원이 가까운 곳, 마트가 인접한 곳, 대중교통이 발달한 곳에 살아야지.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길 것이니, 차를 운전하고 바삐 다녀야 하는 곳이 없을 테니.
집은 작은 단독주택을 떠올린다. 손바닥만한 마당이 있어 한 켠에 예쁜 꽃 두어 개를 심고, 따뜻한 볕이 드는 날 앉아서 꾸벅꾸벅 졸만한 의자 하나를 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집 마당을 드나드는 길냥이가 두세 마리 있어 매일 사료를 부어주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면 좋겠다. 나는 마당 의자에 앉아 가만가만 냥이들을 바라보고, 그들도 내 곁에서 가만가만 졸다 가는 그런 풍경. 계절마다 다른 온도의 공기가 차오르고, 다른 색감의 햇빛이 드나들 수 있다면,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는 걸 자연스레 알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좋겠다.
무릎이 쑤실 테니 집은 단층이면 좋겠고, 청소하기 귀찮으니 넓지 않은 소박한 평수였으면 한다. 방은 두 개쯤 있어 그 중 한 방 창문 아래 책상 하나를 두고 등 뒤에는 넉넉한 책장을 놓고, 자주 읽고 쓰고 싶다. 거기에 앉아 다정하고 따뜻한 글들을 적어야지. 간결하고 여백이 있지만, 읽으며 자주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글이라면 좋겠다. 나이 많은 할머니 작가지만, 적은 수의 고정 팬이 있어 종종 내 글을 찾아보는 이들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식사 때가 되면, 냉장고에 있는 야채 한두 개를 썰어넣고 된장을 조금 풀어 슴슴하지만 따뜻한 국을 끓이고,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야채와 쌈장을 조금 내고, 따뜻한 밥 반 공기를 올리고 싶다. 그저 한 술 뜨고 마는 그런 밥상. 잘 차려야 한다는, 가짓수를 채워야 한다는 의무가 모두 사라져, 적게 올리고 적게 먹는 간소한 밥상이라면 좋겠다. 소화도 잘 되고 차리기도 치우기도 쉬운 노인의 밥상.
느리더라도 짧더라도 하루 한 번은 꼭 동네 산책을 하고, 그 산책길에 작은 마트에 들러 계절 식재료를 하나쯤 사면 좋겠다. 인근에 사는 이웃들과 눈 인사를 나누고 이따금 날씨에 대해 일상에 대해 담소를 나눠야지. 매일 그렇게 산책을 하면 어느 날 혹여 내가 혼자 쓰러지더라도 이웃들이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이 노인네가 산책을 거를 리 없는데 하면서.
잊을만 하면 내 키보다 훌쩍 자란 아이들이 찾아와 시키지 않아도 조근조근 자신의 일상을 말해준다면 좋겠다. 내가 내온 소박한 계절 음식들을 함께 나눠먹고 작은 소파에 기대 단잠이 들기를 바란다. 그 짧은 단잠에 일상의 고단함이 모두 녹아내려, 눈을 떴을 때는 한결 개운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자신의 삶으로 걸어가기를. 들어올 때보다 어깨가 조금 펴진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응원을 보낼 수 있기를.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아 마치 시공간이 멈춘 듯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그 속의 나는 크게 소망하는 것도 크게 분노하는 것도 없기를. 세상에 대한 관심은 거두지 않되 늙은이의 오만은 내려두고, 단순하지만 명확한 세상의 진리들에 집중하며 내 안의 그릇을 무한히 넓혀가고 싶다. 삶에 대한 집착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어느 날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
눈을 감기 전에 소중한 이들에게 편지는 남겨야지. 어쩌면 이미 수많은 글을 써 굳이 더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내게 기대있던 이들이 있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 내 글에 기대어 살아갈 힘을 얻기를. 육신은 사라져도 그렇게 어딘가에 글로 남기를. 그런 할머니의 삶과 죽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런 나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다.